정유회사는 내수기업일까 수출기업일까.
보통은 원유를 수입해 주유소에서 파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정유회사=내수회사'로 여겨진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국내에서 파는 것보다 해외에서 파는 액수가 훨씬 많은 엄연한 수출기업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지만,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한 해에 수백억 달러씩 해외로 내다팔고 있는 것이다.
무역 1조 달러 달성의 금자탑은 쌓은 올해 GS칼텍스가 정유사상 처음으로 200억 달러 수출의 신기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GS칼텍스는 12일 열린 제48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200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GS칼텍스가 수출한 금액은 205억5,900만달러. 이 기간 중 GS칼텍스는 243억달러의 원유를 수입해 고부가가치의 석유제품 및 석유화학제품으로 전환, 205억 달러 어치를 수출한 것이다. 원유 수입으로 지불한 외화의 84.4%를 수출로 회수한 것이다.
국내 기업을 통틀어 200억달러 수출고지를 밟은 건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 회사 관계자는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유회사가 국내 2위의 수출회사가 됐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에선 기름을 비싸게 팔아 큰 돈을 버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익은 대부분 수출에서 창출된다"고 말했다.
GS칼텍스의 경우 전체 매출액 가운데 수출비중이 계속 높아져 현재 60%를 넘어선 상태다. 주유소 등에서 파는 기름, 즉 내수는 40%에 못 미치고 있으며 이는 SK에너지나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다른 정유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품목을 봐도 석유제품은 반도체 휴대전화 LCD 등을 누르고 선박과 함께 전체 1,2위를 다투고 있다. 올해 1~11월까지 석유제품은 471억달러 어치가 수출돼 선박(522억달러)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흔히 수출효자품목으로 알려진 반도체(459억달러), 자동차(409억달러) 보다도 많은 액수다.
정유사들이 수출기업이 된 것은 전적으로 설비투자 덕분이다. 정유사들은 '지상의 유전'으로 불리는 고도화 설비에 매년 막대한 투자를 해왔는데, 원유에서 나오는 가장 질 나쁜 기름 즉 벙커C유를 휘발유나 경유로 바꿔 주는 고도화 설비야말로 수출의 핵심이다. SK에너지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다른 정유사들도 현재 세계 최고수준의 고도화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이 수출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건 1979~80대 오일쇼크 이후. GS칼텍스(당시 호남정유)도 오일쇼크의 발발로 하루 38만 배럴의 정제시설이 멈춰서는 상황이 벌어지자, 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 일본 등 26개국에 석유제품을 팔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석유제품은 품질로도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해 있다"면서 "경기침체가 심화될 내년엔 석유제품이 다른 어떤 품목보다도 수출효자종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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