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끌 비상대책위원회의 권한 및 활동 시한 등을 놓고 당내 세력들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특히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것인지 여부에 대해선 친박계와 쇄신파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이날 5시간 15분간이나 진행된 의총에서 발언에 나선 33명 중 21명이 재창당을 요구할 만큼 '재창당론'이 거세게 제기됐다. 심각한 위기상황임을 반영하듯 전체 169명의 의원 중 140여명이 모습을 보일 정도로 참석률도 높았다.
쇄신파들은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가 주도하는 비대위 출범에는 동의하되, 재창당을 위한 준비기구로서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먼저 권영진 의원은 "박 전 대표 중심의 비대위의 권한과 존재 시기에 대해선 제한이 필요하다"며 "비대위는 신당 수준의 재창당을 준비한 뒤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두언 의원은 "우리는 공천권 등 권한 다툼을 하는 게 아니다"며 "박 전 대표가 재창당 후 선대위원장을 맡아 공천도 하고 선거지휘도 하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희룡 의원도 "비대위가 재창당 추진위원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고, 김성식 의원은 "비대위에 역할을 정확히 부여해야 하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선주자인 정몽준 전 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비상 상황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비대위는 현재 상황에서 정상적인 지도부가 탄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쇄신파들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친박계와 당 중진의원들은 비대위 이후 재창당 등의 혼란스런 과정을 거치면 총선을 앞두고 전열이 흐트러진다는 주장 속에 '박근혜 비대위'가 전권을 갖고 내년 총선까지 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박계 중진인 김학송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전대를 열자는 것은 위험하다"며 "전국위원회를 통해 당헌을 개정해 내년 총선 때까지는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종혁 의원도 "박 전 대표에게 총선ㆍ대선을 위한 쇄신 로드맵을 만들라고 하면서 꼬리표를 붙어서야 되겠느냐"며 "위기에서 잔 칼질을 해서는 안되며 자칫하면 모두 죽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의총에서 발언한 다수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비대위를 맡되 비대위의 목적은 재창당에 둬야 한다"는 의견에 뜻을 같이 했다. 친박계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의총에서 33명의 발언이 끝난 뒤 황우여 원내대표는 재창당 문제에 대한 결정을 유보한 채 비대위 구성 결의를 제안했지만, 쇄신파 의원들이 '선(先) 재창당 결정, 후(後) 비대위 구성'을 요구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13일 의총을 재소집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재창당 요구에 대해 친박계 의원들은 "재창당까지만 비대위 하라는 것은 박 전 대표를 흔들려는 의도", "재창당에 한정할 거라면 황 원내대표가 해도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비대위의 역할과 활동 범위 등을 놓고 다음 의총에서도 양측의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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