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1,000번째 수요시위가 예정된 1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길에 소녀 모습의 평화비(높이 130㎝)가 들어선다. 할머니들이 늘 앉아 시위하던 그 자리다. 일본 정부에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선 할머니들의 한 맺힌 역사와 희망을 평화비로 형상화했다. 제작비 3,000만원은 시민 수천 명의 모금으로 마련했다.
평화비는 조각가 김운성(47), 김서경(46) 부부 작품이다. 이들은 "뜻 깊은 일에 참여해 가슴이 벅차면서도 작업 내내 할머니들의 고통이 떠올라 괴로웠다"고 작업 과정을 회고했다. 김씨 부부는 지난 봄 평화비와 인연을 맺었다. 평화비 건립에 대한 대략적인 구상만 나와 있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김운성씨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면서부터다. "살아계신 할머니들도 있는데, 검은 돌에 글씨를 새긴다는 원안의 비석 형태 보단 여러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조형물이 낫다고 생각 했어요."
이후 시안이 확정될 때까지 평화비의 구체적인 모습을 놓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고무신, 빈 의자, 꽃, 나비 모양 등의 조형물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그 때 김서경씨가 피해자들이 일본군에 끌려갔을 때인 14~16세 사이의 소녀상으로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피해자들은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됐지만 가슴엔 여전히 그 때 꿈 많던 소녀가 앉아 있다는 느낌을 전하자는 취지였다. 김씨는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본 게 평화비의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리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소녀상으로 확정된 뒤 3개월 동안 김씨 부부와 평화비는 서울 홍은동 작업실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부부는 "9월 한창 평화비를 만들고 있는데 일본 외무성이 우리 정부에 평화비 설치 중단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녀의 손을 처음 시안대로 다소곳이 모으지 않고 주먹을 불끈 쥐도록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눈빛'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지나치게 날카롭지는 않되 꿰뚫어 보는 그런 시선이 되도록 했어요. 할머니들이 세상을 다 떠나시더라도 평화비는 여기 남아 역사를 지켜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수요시위 때 공개되는 평화비는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이다. 조각상 바닥에 드리워지는 소녀의 그림자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새겨, 쉽게 지워지지 않는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소녀의 왼쪽 어깨엔 '새'를 앉히고, 그림자의 가슴엔 '나비'를 새겼다.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영혼'과 '평화'를 상징한다. 화강석 재질의 조각상 바닥엔 수요시위에 대한 간략한 이력이 한글, 영어, 일본어로 새겨진다. "망각해선 안 될 역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작업을 맡은 건 참 좋은 기회였어요. 하지만 이런 작업을 다시는 할 필요가 없도록 '평화의 역사'를 만드는 게 우리한테 주어진 과제 아닐까요."
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