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를 할 때 마다 '후련하다'는 말씀을 유독 자주 하셨어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고 하신 거죠."
음식물조차 넘기지 못해 위에 연결된 관으로 영양식을 공급받고 있는 황금자(87) 할머니를 대신해 김정환(46) 서울 강서구청 자원봉사팀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할머니를 보살피다 깊이 정이 든 김 팀장은 황 할머니를 양 어머니로 모시고 있다.
서울 등촌동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10여년 전만 해도 강서구청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가 많았다. 함경도 출신인 그는 열 세살 때 일본 순사에 붙잡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고, 귀국 후에도 평생 홀로 살면서 가슴에 맺힌 한이 적지 않았다. 그 때 할머니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준 사람이 김 팀장이었고, 할머니도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기부를 시작했다.
2006년 4,000만원을 시작으로 2008년과 2010년에 각각 3,000만원씩, 그렇게 정확히 1억원을 재단법인 강서구 장학회에 내놓았다. 점심은 복지관에서 해결하고 겨울 난방비를 아껴 모은 '피 같은' 돈이었다. 빈병과 폐지를 주워 100원, 200원씩 모았고, 정부에서 매달 받는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비, 노령연금도 손 대지 않고 차곡차곡 쌓기만 했다.
7월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황 할머니는 또 기부를 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기부해왔던 예금뿐 아니라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의 임차 보증금까지 포함된 약 3,000만원의 전 재산을 내놓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리고 "후련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황 할머니는 현재 등촌동 집에 머물며 간병을 받고 있다. 김 팀장은 "할머니는 병세가 조금 심각해, 몇 마디 말씀은 하시는데 알아 듣기가 힘들다"며 "하지만 편안해 보이신다"고 전했다. 강서구는 할머니가 별세할 경우 구민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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