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외교관이 간첩 혐의로 추방됐다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과거 고급 정보에 치중했던 러시아의 스파이 전략이 '낮은 수준의,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외무부는 최근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미하일 레핀(사진) 3등서기관을 본국으로 추방했다. 레핀은 지난 2년간 영국의 안보ㆍ국방 관계자들과 접촉해 얻은 각종 정보를 러시아 당국에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레핀의 실제 신분은 러시아 해외정보국(SVR) 산하 Line PR(정치ㆍ경제ㆍ군사공작 담당 부서) 소속 공작원"이라고 밝혔다.
레핀은 특정 대상과 정보에 역량을 집중하던 러시아의 전통적 스파이와 궤를 달리한다. 그는 외교관 신분을 내세워 의회나 행정부 내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자연스레 친분을 쌓은 뒤 정보를 빼내간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왕립 합동군사연구소(RUSI) 등 영국의 유명 싱크탱크가 그의 표적이 됐다. 이렇게 모인 정보는 당장 러시아의 핵심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대외 전략 수립에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레핀이 점찍어 관리한 대상도 장차 그러한 정보를 다루거나 영국의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이다. 영국 안보부서 당국자는 "국제 안보ㆍ국방 문제를 논의하는 IISS 포럼은 외국 스파이에게 인재 발굴 집합소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MI5(영국 국내정보국)는 "레핀과 같은 친절한(friendly) 스파이의 출현은 러시아가 영국을 국익 극대화를 위한 타깃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10월에도 러시아 대외정보국의 지시를 받은 여간첩이 현역 하원의원과 내연관계를 맺고 정보를 수집하다 적발된 적이 있다. MI5 관계자는 "현재 영국에서 30~50명의 러시아 스파이가 위장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영국이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미 관계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