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5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를 전력 비상 수급기간으로 정했다. 이미 정전대란을 한 차례 겪은 상태에서 올 겨울 전력수급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판단, 강제절전과 과태료 부과 및 피크타임 요금제 확대 등의 전력 사용 억제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반적인 준비 부족과 잇따른 발전소 고장과 정전사고 등으로 정부의 전력관리 시스템 운영 능력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강추위 시작과 함께 또 한번 정전사태가 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가시질 않고 있다.
11일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동서발전의 울산화력발전소 5호 발전기가 터빈 고장으로 나흘째 가동 중단 상태다. 이에 따라 8만가구 공급분량인 40만㎾의 전력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보름 정도면 정상가동이 가능해 동계 전력수급에는 전혀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에도 당진화력 4호기와 신인천복합 10ㆍ11호기가 고장으로 가동을 멈춘 적이 있고, 앞서 10월에도 3기의 발전기가 가동 중에 멈춰선 바 있다.
사실 고장이나 사고로 인한 전력공급 차질은 생각이상으로 크다. 2004~2010년 발전소 고장이나 사고로 인한 발전손실량은 서울 지역 1년 전력소비량의 절반이 넘는 294만9,892㎿h나 됐다. 정부와 한전, 발전회사들의 발전소 관리 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인데, 초유의 9ㆍ15 대정전 사태를 겪은 뒤에서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올 겨울 최대 전력수요를 지난해보다 5.3% 증가한 7,853만㎾로 예상했고, 특히 내년 1월 2~3주 예비전력은 53만㎾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스스로 경고한 상태. 때문에 잦은 고장이나 발전소는 겨울철 정전에 대한 우려를 더욱 높이고 있다. 1~2기만 고장 나도 대한민국 전체가 언제든 암흑에 빠져들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울산석유화학공단에서 발생한 정전사고 역시 정부의 전력관리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사례다. 변전소 설비 이상으로 발생한 이번 정전이 다른 공단에서도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전 관계자는 "송배전 시설이 낡은 곳이 많지만 그간 적자가 누적되면서 필요한 설비투자가 지연된 곳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전력소비량 1,000㎾를 넘는 공장과 대형빌딩, 상업시설에 대해 작년 대비 10% 절전을 의무화하고 15일부터는 위반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과태료가 최고 300만원에 불과해 "차라리 과태료를 내더라도 공장을 기존대로 가동하겠다"(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이 적지 않은 것. 전력 피크시간대인 오후 5~7시 네온사인 조명 사용 금지 방안도 이를 단속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인력 부족 때문에 제대로 단속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환경정의시민연대 관계자는 "전력공급량을 단기간에 늘릴 수 없는 만큼 수요관리에 치중하겠다는 정부의 큰 정책방향은 옳다"며 "다만 전력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운용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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