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가 1895년 시해된 후 2년 넘게 치러진 장례식 관련 모든 내용을 세세하게 그림으로 묘사한 '조선의궤-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이를 포함한 147종 약 1,200권에 이르는 조선왕실의궤가 6일 일본 정부로부터 우리 정부에 반환됐다.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정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일본에 넘어간 후 약 90년 만이고, 우리 정부가 일본 궁내청에 조선왕실의궤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2001년 공식 확인한 지 10년 만이다.
이번 조선왕실의궤 반환 일등공신은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대한 불교 조계종 25교구 본사 봉선사에서 정진 중인 혜문스님이다. 그는 2006년부터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를 만들어 의궤 반환운동을 주도해왔다. "이제 도쿄 국립박물관에 있는 고종황제 투구와 갑옷을 찾는 것을 우선 목표입니다. 이를 포함한 4대 목표를 위해 이제 다시 시작할 겁니다."
1973년에 태어나 1998년 출가 후부터 그가 문화재 반환운동에 모든 힘을 바친 이유에 대해 그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문화재 반환운동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며 "은사인 철안 스님의 문화재 현황 파악지시가 첫 계기였다"고 했다.
2003년 평소 불교문화재에 관심이 많던 철안 스님이 봉선사 주지로 부임 후 혜문 스님에게 봉선사 관할 27개 전통사찰에 대한 문화재 현황 파악을 맡겼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많은 문화재들이 불법적인 경로로 흩어져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후 2004년 일본에 6개월간 머물며 현재 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는 문화재들의 현주소를 알게 됐다.
"우리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문화재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1,432점의 문화재를 반환 받았습니다. 그런데 2004년 한일협정 문서가 완전 공개되면서 알게 된 반환목록에는 짚신, 막도장, 우체부 모자 등이 문화재로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죠."
한일협정에 따라 문화재 환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당시 분위기에서 그는 결국 민간차원에서라도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고 환수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4년간 50여 차례 일본을 찾아 문화재 반환의 정당성 등을 알리고, 북한 불교계와 협조를 통해 뜻을 이뤘다.
의궤 반환 이후 4대 목표를 세운 그의 문화재 반환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4대 목표는 고종황제 투구와 갑옷,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 소장된 라마탑형 사리구, 중국 여순박물관에 소장된 금강산 장안사 종, 일본 오쿠라 호텔에 소장된 2기의 고려석탑이다. 그는 이중 고종 투구와 갑옷이 아직 일본에 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군대가 싸울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고종 투구와 갑옷 등의 문화재 반환을 두고 일본 중의원과 서울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14일 좌담회를 갖는다. 의궤반환 이후 다시 일본에게 우리 문화재를 돌려달라는 민간 차원의 첫 공식 행사다. 의궤 반환 이후 다시 일본에게 우리 문화재를 돌려달라는 민간차원 첫 공식행사다.
혜문 스님은 특히 문화재 반환운동과 관련 민간차원에서 남북협력도 강조한다. 실제 2005년 북관대첩비 반환, 2006년 조선왕조실록 반환, 이번 조선왕실의궤 반환 모두 북한 조선불교도 연맹과 협의해 진행된 일들이다. 그는 "4대 목표 역시 지난달 개성에서 이들과 만나 협의한 사항"이라며 한일협정에 따른 문화재 청구권 소멸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북한 불교계 도움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혜문 스님은 이번 의궤 반환을 기점으로 자신이 처음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민간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 조직도 새롭게 가다듬기로 했다. 현재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그는 13일부터 이 단체 대표로 활동한다.
그는 "사실 그 동안 '젊은 사람이, 스님이 왜 직접 문화재 반환운동에 나서냐'는 시선을 받을까 사무총장 직함으로 대표역할을 해왔다"며 "하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평생 할 일이라면 앞장서 더욱 책임감을 갖고 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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