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식음료계에는 가격을 올렸다가 곧바로 '원위치'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가 상승 탓에 "어쩔 수 없다"며 가격 인상을 발표한 뒤,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물가안정을 위해 인상을 보류한다"고 번복하는 것이지요.
오비맥주가 그런 경우입니다. 오비맥주는 지난 8일 카스와 OB골든라거, 카프리 등 주요 맥주제품의 출고가를 11일부터 평균 7.48%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11일이 되자, 연말 소비자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 시책에 부응해 가격 인상 계획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왔습니다.
맥주가격 인상이 사흘 만에 백지화되는 데는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오비맥주의 인상소식이 전해지자, 주부관청인 국세청이 움직였다는 후문입니다. 10일엔 오비맥주 임원진과 국세청 관계자들이 시내 모처에서 만나 가격인상을 놓고 의견을 조율했다고 하네요. 이 자리에서 국세청측은 "인상 취지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다"는 뜻을 오비맥주에 전했다는 후문입니다.
국세청은 주류업체 면허를 발급하는 곳입니다. 주류회사들은 가격을 조정하면 2일 이내에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지요. 물론 허가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세청이 가격인상을 막을 권한은 없지만, 국세청이 요청하면 과연 어떤 기업이 거부하겠습니까.
앞서 롯데칠성음료도 그랬습니다. 지난달 18일부터 칠성사이다와 펩시콜라, 게토레이 등 주요 음료 5종의 가격을 최고 9%까지 인상했다가 열흘 만에 다시 '원위치'시켰지요. "정부시책에 호응하고자 고통분담 차원에서 선택한 결정"이라고 말했지만, 정부 측에서 비공식적인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기업이 가격을 안올려주는 게 최선이지요. 정부도 그렇기 때문에 무리수인줄 알면서도 기업들에게 가격인상철회를 요청했을 겁니다.
하지만 명색이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에서 개별품목가격까지 정부가 나서는 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전세보증금처럼 정작 크게 오르는 건 따로 있는데, 더구나 정부는 공공요금 올릴 거 다 올리면서 콜라 맥주 가격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분명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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