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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근태와 고문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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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근태와 고문후유증

입력
2011.12.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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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 언론인 송건호, 김홍일 전 의원,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이들의 공통점은 파킨슨병으로 타계했거나 투병 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심한 고문을 당했다. 1993년 '귀천(歸天)'한 천상병은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전기고문 등으로 육체와 정신이 심하게 망가졌다. 8년간 파킨슨병에 시달리다 2001년 작고한 송건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중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 전 의원도 같은 사건으로 중정에 끌려가 아버지가 '빨갱이'임을 시인하도록 심한 고문을 받았다.

■ 김 상임고문은 전두환 정권 시절 악명 높았던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았다. 정말 죽고 싶었을 정도로 지독했던 고문의 고통은 그에게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운동장애, 떨림, 인지ㆍ기억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파킨슨병의 발병 기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심한 외상이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한 원인이라는 것은 거의 정설인 만큼 김 상임고문의 발병은 고문후유증이라고 봐야 한다. 천상병 등 고문피해자 중에 파킨슨병 환자가 많은 것은 우연일 수 없다.

■ 김 상임고문은 고문후유증으로 많은 질병을 얻었다. 물고문 후유증으로 심한 비염과 축농증을 앓았으나 고문 트라우마 때문에 수술대에 오르기를 거부하다 병을 키웠다. 고문 기억을 자극하는 기계음이 두려워 치과치료를 기피하는 바람에 치아건강도 좋지 않다. 지금 그는 뇌정맥혈전증이 겹쳐 서울대병원서 입원치료 중이다. 절대안정을 요하는 의료진 권고로 10일 열린 딸 병민씨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감옥 들락거리느라 제대로 못 보살핀 딸이다. 그런 딸의 팔을 잡고 식장에 들어서지 못한 아비 심정이 오죽할까. 병민씨도 눈물을 하도 흘려 신부화장이 다 지워졌다.

■ 고문후유증은 그의 정치활동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다. 정연한 논리와 신뢰감, 올바른 문제의식을 두루 갖추고도 대중호소력이 약하게 비친 것은 고문후유증에 따른 장애 탓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민주진보진영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지대하다. 입원 직전까지 야권통합을 위해 빛이 안 나는 곳에서 애를 썼다. 파킨슨병이나 뇌혈류 문제 같은 것들이 그의 열망과 노력에 장애가 될 수 없다. 덩샤오핑도 파킨슨병을 앓았지만 93세까지 장수하며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다. 김 상임고문이 하루빨리 병상을 털고 일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 가기를 기원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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