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위기 해법을 놓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념적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 정상의 갈등은 8, 9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 국가의 재정적자가 커지면 실질적 제재가 가능하게 하는 등 독일식 해법을 밀어 부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EU 재정통합을 강화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독일 주도의 해결책에 오바마 대통령은 날카로운 경고로 응수했다. 그는 "장기적 정치, 경제 변화는 바람직하다"면서도 "시장의 반응에 빠르게 대응하는데 실패하면 수개월 내 유로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논쟁의 핵심은 '정부가 시장의 압박에 얼마만큼 굴복하느냐'라고 NYT는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의 우선목표와 공공정책 변화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시장의 안정과 투자자의 신뢰회복을 꼽는다. 메르켈 총리는 금융산업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고 있으며, 대출자와 채무자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실질적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독일외교정책위원회의 EU 전문가 알무트 묄러는 이를 두고 "이념의 싸움"이라면서 "세계화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확립하는 방법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장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것은 2008년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로 인한 금융위기 당시 연방준비제도의 무조건적 지원을 등에 업고 과감하게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전세계가 또 다른 대공황에 빠지는 것을 방지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은 더 큰 부채를 안아야 하거나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는 해결책은 강하게 반대한다. NYT는 독일의 반응이 1920년대 초인플레 악몽을 겪었던 것과 관련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오바마 진영은 유럽에게 실질적인 위협은 1920년대 초인플레가 아니라 1930년대 디플레이션과 공황의 재현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독일 관리들은 내년 선거 결과만이 오바마의 주관심사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오히려 시장의 신뢰 하락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의 퇴진을 이끌어냈다고 강조했다.
EU 정상들의 합의로 일단 메르켈이 판정승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어떤 접근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에는 수주 또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만일 새로운 재정협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쓸모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다시 위기라는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NYT는 메르켈의 전략이 옳은지는 12일 금융시장에서부터 드러날 것이라고 전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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