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였다. 경찰이 9일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 공모(27ㆍ구속)씨의 단독 범행으로 10ㆍ26 재보궐선거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후보 홈페이지 디도스(DDoSㆍ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사전 모의 없는 우발적 범행?
경찰은 통화 기록 조회를 통해 공씨가 고향 후배인 IT업체 대표 강모(25)씨에게 9월17일 통화한 뒤 10월25일 전까지는 통화가 없었다고 했다. 한 달 이상 연락이 뜸했고, 공씨가 강씨의 필리핀 체류 사실을 몰랐던 점, "공씨의 공격 요청을 받고서야 선관위가 어떤 곳인지, 박원순이 누구인지를 검색해 봤다"는 강씨의 진술을 근거로 우발적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모두 피의자들의 진술에 기초한 것이다. 대포폰을 사용해 통화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믿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장 비서는 왜 보고도 안 했나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 김모(30)씨는 공씨가 디도스 공격 의도를 사전에 두 번이나 알려준,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정치적으로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는 데도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다. 김씨는 또 "안 잡힐 겁니다. 안 잡힌다고 했습니다"라는 공씨의 발언을 들었다. 범죄 사실을 알고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앞뒤 안 맞는 공씨의 진술
공씨가 최구식 의원실에 취직한 것은 김씨 덕분이다. 공씨가 '멘토'로 대접하던 김씨는 25일 밤 "(선관위ㆍ박 후보 홈페이지를) 때리삐까예(때려버릴까요)"라며 디도스 공격 의사를 밝히는 공씨에게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큰일 난다"며 만류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공씨는 공격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공씨는 "술김에 (취해서) 그랬다"고 답했다.
그러나 술자리 참석자들에 따르면 공씨는 그때 30통 가까운 통화를 하며 룸을 들락거리느라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공씨 자신도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모순 투성이다. 배후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아무 대가 없이 해줬다?
강씨는 "공씨가 온라인 도박 합법화에 힘써 준다고 했다"며 "공씨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 대가 없이 요청에 응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온라인 도박 합법화를 일개 20대 의원 비서(9급)가 합법화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그는 순진했을까. 최소 억대의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디도스 공격을, 아무리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으로 돈을 많이 벌어놓았다는 강씨라 해도, 아무런 대가 없이 해줬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경찰은 이들이 사용했을지 모르는 대포통장은 물론, 계좌 추적도 마치지 못한 상태다.
계속된 거짓말, 말 바꾸기
25일 저녁 종로 한정식집에서 박 의장 비서 김씨를 비롯한 4명이 저녁을 먹었다. 이 중 2명이 역삼동 B룸살롱으로 2차를 갔다. 공씨 등이 참석한 2차 자리에서 디도스 공격이 이뤄졌던 만큼 1차 자리서 오간 대화 내용은 각종 의혹을 푸는 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은 제대로 조사를 못했다. 처음에 이들은 "정치를 싫어해서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디도스의 디 자도 모른다"고 진술했다. 국회의원 비서 3명과 청와대 행정관이 선거일 전날 모인 자리에서 관련 이야기가 없었다는 진술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구나 "2차 자리에서도 병원 투자 얘기만 오갔다"는 초반 진술이, 나중에는 김씨와 공씨 간에 디도스 공격 얘기가 있었다는 것으로 180도 바뀌었다. 다른 진술도 의심케 하는 대목이지만 경찰은 이를 물고 늘어지지 못했다.
경찰, 수사 의지 있었나
강씨 회사 직원 차모(27)씨는 디도스 공격 당시 공씨와 두 차례에 걸쳐 장시간 통화했다. 범행에 직접 관여됐을 가능성이 짙지만 경찰은 강씨 일당 검거 9일 만인 지난 8일에야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보다 빨리 차씨의 진술을 확보해 압박했더라면 공씨의 자백은 더 일찍 나왔을 것이다. 경찰은 또 사이버수사대원 전원(26명)을 투입했다며 총력수사를 강조했지만, 공씨 일당이 검거된 이후의 수사는 인터넷 공격 루트 추적 전문인 사이버수사대원들의 수사 영역이라고 보기 힘들다. 진작 보다 큰 규모의 특수수사과 요원들을 투입했더라면 경찰 수사 최종 발표는 달라졌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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