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랜섬 릭스 지음ㆍ이진 옮김/폴라북스 발행ㆍ432쪽ㆍ1만4,000원
사진 속 여자의 발은 땅에 닿아있지 않다. 사진들에는 유리병 속에 갇힌 소녀, 뒤쪽 어두운 문 어딘가에 숨겨진 장치로 매달려 있는 것이 분명한 공중에 떠 있는 아기도 등장한다.
소년은 매일 할아버지가 이런 이상한 사진을 놓고 펼쳐놓는 모험담을 들으며 자랐다. 할아버지는 사진 속 아이들과 천국 같은 어린이집에 살다가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그곳을 떠나왔다고 했다. 소년은 나이를 먹으며 이 이야기가 뻥이라고 확신하지만 열여섯 번째 생일을 앞둔 어느 날 할아버지가 처참한 모습으로 집 근처에서 발견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소년은 할아버지 이야기에 등장했던 괴물을 목격하고 할아버지는 숨이 끊기기 전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노인의 무덤 건너편, 루프, 새, 1940년 9월 3일"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유언을 남긴다. 소년은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살았다던 웨일스의 외딴 섬으로 유언의 비밀을 찾으러 떠난다.
랜섬 릭스의 첫 장편소설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은 익숙한 코드의 힘으로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평범하다 못해 찌질한 소년이 고생 끝에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는 슈퍼맨부터 스파이더맨까지 익숙한 영웅서사의 코드이고, 어느 날 갑자기 마법 세계에 입문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 미션을 해결하며 주인공이 성장한다는 발상은 해리포터와도 비슷하다. 게다가 이 이상한 아이들의 집 원장 페러그린이 이름처럼 때때로 송골매로 변한다는 점도 해리포터와 닮았다. 페러그린과>
소설의 차별화는 저 기묘한 사진과 이야기를 엮어내는 혼종성에 있다. 책을 펼치면 주인공이 보는 저 사진들이 이야기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사진을 찍은 배경과 사진 속 인물을 설명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를테면 폐허로 변한 할아버지의 어린이집을 뒤지다 소년이 70년 전 찍은 사진 속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를 전공한 작가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아니나 다를까, 20세기 폭스사가 영화화하기로 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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