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진은 어릴 때부터 1985년생 소띠 동갑인 최철한, 박영훈과 함께 '송아지 삼총사'라 불리며 장차 한국 바둑계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감으로 주목 받았다. 1997년 최철한을 시작으로 원성진 박영훈이 1년 터울로 나란히 입단해 프로의 세계에서도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최철한과 박영훈이 입단한 지 얼마 안 돼 국내 기전은 물론 세계대회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단박에 정상급 기사로 올라섰지만 원성진은 번번히 정상 도전에 실패, '만년 준우승'이라는 달갑잖은 별명까지 붙으면서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그래도 평소 성실하고 과묵한 성격인 원성진은 전혀 흔들림 없이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지키며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전진했다. 드디어 2007년 천원전에서 우승, 입단 9년 만에 본격기전에서 첫 정상에 오르면서 서서히 힘을 내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GS칼텍스배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기전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2002년과 2003년 LG배 4강에 올랐던 게 최고 기록이다. 세계대회 결승 진출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원성진은 입단 13년만에 맞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볼 때 이번 결승 3번기는 원성진의 열세라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결승전 첫 판에서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강펀치를 날려 구리의 대마를 잡고 쾌승한 데 이어 두 번째 판에서도 대마를 공격해 거의 승리 직전까지 갔다가 아쉽게 실패, 1승 1패가 됐다. 최종국에서는 끈질긴 투혼을 발휘해 중반 무렵까지 불리했던 바둑을 종반 끝내기에서 기어이 역전시켰다.
원성진은 2004년 농심배에서 구리와 처음 만난 이후 3연패를 했으나 2008년 한중 천원전에서 두 판을 내리 이겨 우승을 차지하며 승부의 흐름을 돌렸다. 이번 삼성화재배서 다시 2대 1로 승리해 역시 대기만성형 기사임을 입증했다. 상대 전적도 4승 4패 동률이 됐다. 원성진은 시상식에서 "프로가 되고 나서 항상 목표로 삼았던 세계대회 우승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오랫동안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라며 "이번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더욱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원성진의 우승은 본인은 물론 한국 바둑계로서도 의미가 크다. 2009년(콩지에)과 2010년(구리) 계속해서 중국에 내줬던 삼성화재배를 2년만에 되찾아 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라별 우승 회수는 한국 10회, 중국 4회, 일본 2회가 됐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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