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現像)에 대한 양자론의 인식이 2,500여 년 전 붓다의 그것과 흡사한 건 참 묘하다. 관자재보살을 통해 밝히는 붓다의 인식은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의 명구다. 거칠게 말해, 일체의 물질적 현상인 '색'은 아무것도 없는 '공'과 다르지 않으니, '공'이 곧 '색'이라는 것이다. 한편, 빛이 파동인 동시에 입자일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추론은 궁극적 입자의 본성을 통해 현상이 실체가 있는 것(색)이기도 하고 없는 것(공)일 수 있다는 현묘한 이치를 밝혔다.
■ 양자역학의 기본 가설인 이 추론은 또 하나의 신비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평행우주론이 그것이다. 확고해 보이는 현상이 실제론 입자와 파동 사이의 궁극적인 역학에 따라 동시에 달리 발현되는 무한한 가능성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가능성이 발현되는 무한한 수의 우주가 따로 있다는 얘기다. 이를 빅뱅 시점에 적용하면, '우리의 우주' 너머엔 빅뱅의 물리적 양상이 달랐던 무한수의 평행우주가 병존한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또 외화 에서처럼 동시간대의 다른 차원에도 현상(사건)의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지는 무한한 평행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
■ 평행우주론을 우리의 우주라는 공간에만 적용해도 놀라운 결론이 나온다. 현상의 가능성이 무한하다면 우리의 우주 어딘가엔 지구와 똑같은 행성이 있을 수 있다. 나아가 그 행성에서도 지구 현상이 똑같이 전개돼 또 하나의 내가 여기와 똑같이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우주의 어딘가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의 궁극을 짚어가다 보면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상이 고스란히 병행되는 또 하나의 지구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게 우주의 신비를 새삼 일깨운다.
■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지구로부터 약 600 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지구와 온도가 비슷해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큰 행성 '케플러 22-b'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크기는 지구의 약 2.4배, 온도는 22도 정도다. 구성물질이 지구 같은 암석인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못했다. 하지만 중심별의 크기와 온도, 중심별과의 거리, 공전 주기 등 물리적 상황이 지구와 유사한 행성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는 건 여러 가지 상상의 지평을 열어준다. 그나저나 붓다는 그 찬란한 열반의 순간에 무한한 우주의 차원을 넘어 또 하나의 지구까지 엿봤던 것일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