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라 해도 좋고 그냥 '모임'이라 해도 좋다. 어찌 됐든 수개월, 또는 수년 만에 만날 친구, 동창, 지인 생각에 설레는 송년회 시즌이다. 한때의 풋풋한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고 죽어라 밥 안 먹는 아이 쫓아 다니느라 산발한 머리 모양이 일상이 된 주부라고 해도 누구나 한 번쯤은 공주, 여왕처럼 보이고 싶어지는 때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지는 않아도 아이들과 씨름하며 복닥대는 삶이 행복하다 자위하고 싶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초라하게 보이기는 싫은 게 인지상정. 하지만 자영업이 전체 고용의 40%를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도 폐업이 속출하는 이 불경기에 '블랙타이 드레스 코드'(턱시도와 드레스로 모임에 예의를 갖춰 달라는 의미)에 필요한 성장(盛粧)은커녕 제대로 된 치마 정장 한 벌 갖춰 입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고민해 봤다. 자칭 쇼핑광이자 GS샵의 패션ㆍ뷰티 전문 쇼핑호스트인 정윤정(35)씨와 함께 평범한 주부들이 연말 모임 옷차림을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감각 있게 준비하는 방법을 알아봤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회원 수 1만명이 넘는 인터넷 팬카페(cafe.daum.net/jyjshopping)의 주인공인 '주부 패셔니스타' 정씨는 어떤 감각으로 파티 의상을 연출할까. 그의 말에 따르면 다행히 최근 몇 년 간 겨울옷의 유행 동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선택의 폭은 꽤 넓다. 지금 당장 할 일은 옷장을 점검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해법은 모피와 반짝이는 스커트
많은 패션 전문가들이 그렇듯 정씨 역시 연말 모임에 필요한 패션 아이템으로 모피와 스팽글이나 금사로 무늬를 수놓은 반짝이는 아이템을 추천한다. 그런데 모피는 사치품이 아닌가.
하지만 10년간 패션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쇼핑호스트로 일해 온 정씨의 생각은 확고하다. "칼라에 여우털이나 라쿤털을 단 코트와 재킷이 벌써 몇 년째 유행하고 있는지 몰라요. 지금 옷장을 잘 뒤져 보시면 분명히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털 칼라 한두 개쯤은 갖고 계실 걸요? 그걸 원피스에 살짝 얹기만 해도 그냥 원피스만 입었을 때보다 훨씬 우아해 보이죠."
정씨는 조심스럽게 머플러 등 모피로 된 소품 구입을 권하기도 했다. "동대문 시장에 가면 어깨에 얹을 수 있는 여우털 장식을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원피스 한 벌 가격 정도에 살 수 있어요. 새로 옷을 사기보다는 이런 아이템에 투자를 하면 겨울 내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프린트가 화려한 스카프를 모피 대신 두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대신 그는 "여기에 함께 입을 수 있는 스팽글, 금사, 은사 무늬의 원피스나 스커트 구입을 고려한다면 고가 브랜드보다 저가 브랜드에서 오히려 더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안심시킨다. "소재에 신경을 쓰는 고가 의류브랜드에서는 옷감을 손상시킬 수 있는 스팽글 소재의 장식을 넣은 디자인보다는 단정하고 깔끔한 디자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게 패션 판매자로서 그의 분석이다.
앞여밈을 채우는 방식이 싱글이든 더블단추든 상관 없이 길이가 허벅지 정도까지 내려오는 기본형 모직 코트에 스팽글 장식이 화려한 미니원피스 한 벌만 같이 입어도 연말 모임 패션으로 훌륭하다.
▦세탁해 들여놓았던 여름 원피스가 보배
정씨는 또 연말 모임에서 돋보이기 위해 소재의 고정관념을 깰 것을 제안했다. 겨울 의상은 무조건 두툼한 모직 소재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이야기다. 아주 얇은 소재만 아니라면 코트나 재킷 안에는 여름, 가을에 즐겨 입었던 원피스 등을 활용하는 게 좋다. 서양 문화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있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특정 장소를 빌려 파티 형식으로 연말 모임을 갖는 게 요즘 추세다. 따라서 외투 안쪽까지 지나치게 방한을 고려해 의상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두툼한 모직 스커트를 입었을 때보다는 실크 원피스를 입었을 때 부드러운 여성의 선이 살아나게 되고 자연히 매혹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팔이나 7분 소매의 원피스를 입고 여름에 활용했던 팔찌(뱅글)를 해 주면 화려한 모임의 주인공 옷차림으로 손색이 없다.
▦원포인트가 핵심, 진주목걸이부터 스타킹까지
인터넷 팬카페 회원들이 패션에 대해 다양한 조언을 구하는 일이 흔할 만큼 패션 감각을 인정받고 있는 정씨지만 그에게도 옷차림 때문에 고민이 되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연예인들이 수백 만원 대의 고가 브랜드 제품을 입고 대거 모여드는 해외 브랜드의 패션쇼 등에 초대받아 참석할 때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얼마 전 참석했던 행사에서 친한 연예인에게 의상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TV홈쇼핑에서 판매한 비싸지 않은 가죽 라이더 재킷과 함께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으로 차려 입고 애나멜 소재의 핸드백과 붉은 립스틱으로 포인트를 준 스타일이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설명하며 '올블랙' 패션에 진주, 또는 골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준 옷차림도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고 추천했다. 마땅한 액세서리가 없다면 값비싼 귀금속이 아닌 저렴한 패션 액세서리를 구입해 착용해도 특별한 날에 조금 멋을 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특히 자녀가 있는 주부들은 1년 365일 바지를 입는 경우가 많지만 연말 모임 때만은 스커트를 입는 게 좋다. 튀는 원색의 스커트가 있다면 이 역시 좋은 의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무난한 색상의 치마만 갖고 있다면 반투명 스타킹을 신어 여성미를 강조하는 게 좋다. 또는 와인빛 등 튀는 색상의 스타킹을 선택하면 다리에 포인트를 둔 의상이 될 수 있다.
치마가 영 불편하다면 몇 년 전부터 스키니 팬츠가 유행하는 바람에 옷장에만 보관해야 했던 10여 년 전 구입한 바지통 넓은 정장 팬츠를 활용해 볼 수 있다. 여기에 가죽 라이더 재킷을 걸치면 패션잡지 기자 같은 느낌을 주는 감각 있는 스타일이 완성된다. 혹은 역시 수년 째 꾸준히 유행하고 있는 봄ㆍ가을용 트위드 재킷을 꺼내 정장 팬츠와 함께 입으면 우아한 옷차림이 된다.
이 같은 정씨의 제안에 따라 활용 가능한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를 꺼내 놓았다고 해서 연말 모임용 의상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패션 전문가들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스타일 원칙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씨가 진행하는 TV홈쇼핑 프로그램의 패널이자 연예계 대표 스타일리스트인 김우리씨는 "연말 모임에서 너무 튀려다 의상 선택에 무리수를 두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파티라고 해도 연말 모임은 새로운 사교보다는 지인들끼리 친목 도모가 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출이 지나친 의상은 피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자신이 자주 입는 의상 패턴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바꾸면 남의 옷을 입었다는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불편해 대화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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