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참여했던 고위 통상 관료로부터 한미간 협상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미국 측의 협상 준비는 치밀하고 철저했다고 한다. 특히 법적 문제를 매우 꼼꼼히 따지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비중은 여러 나라와 가졌던 FTA 중 하나, 즉 'N분의 1'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지라 절박감의 정도에서 한미간 협상 자세가 달랐다고 했다. 대체로 호평을 받은 1차 협상 타결 뒤인 2008년 봄 들은 이야기다.
FTA 협상에 임했던 통상 전문관료들의 마음가짐을 의심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애국적(?)인 자세가 협상 전반의 완벽함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한미 FTA의 한글본 번역 오류가 수백 가지나 됐던 점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미 FTA 국회 비준 이후 FTA의 미래를 놓고 찬성ㆍ반대파의 주장이 워낙 엇갈리다 보니 사실과 허위의 분별이 쉽지 않다. 마치 난장판을 보는 기분이다. 이러다 보니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지식 Q&A에는 'FTA 체결되면 멕시코처럼 망한다'는 식의 선동은 하지 말고 FTA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달라는 질문까지 올라와 있다. 이 질문자는 자신을 중학교 3학년이라고 소개했다. 난수표나 다름없는 FTA가 중학생의 관심 영역에 든 것은 고무적이다. 왜?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니까.
FTA에 관한 여러 주장들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띤 것은 지난 1일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불평등 조약이 의심된다'는 글이다. 법 전문가가 FTA의 구체적 사안에 대해 분석ㆍ평가했다는 점에서 건설적이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FTA도 결국은 법 문제 아닌가.
김 판사는 자신이 본 FTA 관련 프로그램에서 개인적 의견이나 추측성 주장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만 추출하려 노력했다지만 몇 가지 오류 내지 부실한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어 김 판사는 한번 개방된 수준은 되돌릴 수 없다는 역진방지 조항에 대해 우리 정부가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는 시장보호정책을 취할 여지를 없애는 족쇄라고 했다. 그는 두루뭉술하게 서술했지만 역진방지 조항은 상품을 포함한 전 부문이 아니라 투자나 일부 서비스 부문에 국한된 규정이다. 또 김 판사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는 당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발언을 분개하며 전했다. 하지만 평가하자면 부분적으로만 맞는 이야기다. 협상의 전 과정에서 미국에 우리 협상 정보를 넘겨줬다는 내용이 어디에 근거를 둔 소린지 알 수 없다. 김 판사는 FTA 반대파가 만든 프로그램 내용을 그냥 인용했을 뿐 원 소스(위키리크스나 관련 기사)를 찾아 검증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렇다고 그의 우국충정을 의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전문가 그룹이 국민들을 위해 루비콘강을 건넌 FTA 전반을 낱낱이 뜯어보는 대열에 가담해 문제점을 파헤치고 경고음을 울렸으면 한다. 다만 사실에 입각해 냉정한 머리로 합리적 의심을 해 나간다는 전제가 깔렸으면 좋겠다. 통상 관료들이 제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1,500페이지나 된다는 FTA가 우리 사회에 미칠 그늘과 회색지대를 다 찾아냈으리라 보지는 않는다. 위험을 아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전문가들의 FTA 숨은 그림찾기가 더 활발했으면 한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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