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주택가에서 한 남자가 집을 찾지 못하고 40분째 서성이고 있다. 동네 가게에 가려고 집을 나선 후 자신의 집이 어디였는지 기억해내지 못해 헤매는 것이다. 낯선 길에 들어선 것처럼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남자는 올해 서른 살밖에 되지 않은 치매 환자 김상철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자꾸만 잊어버리고 실수하는 것을 건망증 탓으로 돌렸다고 한다. 그러다 6개월 전부터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 진단 결과 유전성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니던 회사에서도 제대로 일이 안 돼 해고를 당했다.
흐려지는 기억으로 점점 무너져가는 서른 살 청년의 삶을 9일 오후 8시 50분 방송하는 SBS '궁금한 이야기 Y'가 관찰했다.
20대의 알츠하이머 발병은 매우 드물지만 김씨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그는 "뒤돌아보면 방금 전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김씨의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시로 수첩에 적어놓지만 애써 메모한 수첩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치매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집을 찾지 못해 동네 공원에서 보름간 노숙 생활도 했다. 김씨를 돌보는 고모는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냉장고 앞에서 소변을 보더라"며 한숨을 내쉰다.
알츠하이머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으로 알려져 있다. 약으로 병의 진행을 늦추는 수밖에 없다. 상철씨는 기억이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이 두렵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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