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2일 '대통령이 독일을 본보기로 삼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게재했다. 전날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남동부 항구도시 툴롱에서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한 연설에서 "프랑스는 독일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다"는 발언을 비꼰 것이다. 사르코지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유로존 재정통합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정부는 향후 프랑스의 노동시스템을 독일식으로 뜯어고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사르코지가 이날 제안한 사용자와 노조를 망라한 일자리 대협상도 6년 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정책을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프랑스 국민에게 라이벌 독일을 모방하겠다는 대통령의 연설은 충격이었다
경제위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 독일 따라하기 열풍이 거세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7일 "좋건 싫건 유럽 각국이 독일식 모델을 위기탈출을 위한 '마법의 공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동조화 현상은 빚이 많은 국가들에서 두드러진다. 독일의 폐기물 재활용 정책이나 교육시스템은 이탈리아 방송의 단골 메뉴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혹독한 개혁작업을 이끌고 있는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신임 총리는 '독일인보다 더한 이탈리아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독일이 지명한 호르스트 라이헨바흐 그리스 지원 태스크포스 팀장은 그리스 공무원들에게 토지조사와 부유세 부과 노하우 등을 전수하고 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차기 총리가 내년까지 약속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4.4% 감축'도 정확히 메르켈 총리가 요구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잘나가는 독일과 쪽박을 찬 프랑스를 비교하는 분석이 한창이다. 한 달 전 프랑스 자동차메이커 PSA가 6,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을 때 프랑스 신문들은 지난 10년간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 PSA와 독일 경쟁업체 폴크스바겐의 생산량 추이를 보도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 페이를르바드는 "일주일에 35시간 밖에 일을 안 하는 프랑스가 임금상승률을 생산성 이하로 묶어 놓은 독일을 이기는 게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의존도에 비례해 독일을 혐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스페인의 한 우파 일간지는 "독일이 돈 전쟁으로 마침내 3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고 조롱했다. 프랑스 사회당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아르노 몽트부르 하원의원은 "메르켈은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계승자"라며 "독일과 정치적 대결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시위에서는 나치 친위부대 SS의 제복을 입은 메르켈 총리의 포스터를 흔히 볼 수 있다.
독일 입장에선 억울할 법도 하지만 비난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슈피겔은 "메르켈은 다른 대안을 염두에 두지 않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대타협만을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독일이 정한 기준에 맞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군림한다는 얘기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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