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위안부 평화비 설치를 둘러싸고 외교마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설치 중단'을 요청하고 나섰지만 우리 정부는 "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양측의 신경전이 가속화하고 있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일본 관방장관은 8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평화비 설치를 중단시켜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후지무라 장관은 "비석의 설치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한일 외교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대협이 수요집회 1,000회를 맞는 14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의 모습을 한 위안부 평화비를 설치하기로 한 데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이에 앞서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대사도 지난달 25일 박석환 외교부 1차관을 만나 "한국 정부가 나서 평화비를 세우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 외무성은 또 굳이 비를 세운다면 가급적 일본 대사관 앞이 아닌 다른 장소에 세우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9일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대국적 견지에서 결단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빈 협약 22조2항에 따라 외교시설의 안전과 품위 유지에 협조할 의무가 있지만, 이 사안의 경우 시민단체가 추진하는 일이라 정부가 관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사안의 본질을 보면 일본이 먼저 문제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게 우리 외교부의 입장이다.
다른 외교부 관계자도 "9월15일 위안부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과 관련, 양국간 외교 협상을 제안했으나 일본 측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좀 더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 피해자들의 고통을 완화해줄 수 있는 조치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양국간 외교적 냉기류가 조만간 개최 예정인 한일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사안의 성격상 정상회담 공식 의제에 오르기는 쉽지 않지만, 양측 외교당국자들이 만나는 자리인 만큼 어떤 식으로라도 이에 대한 의견이 오갈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한편 정대협은 7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제999회 수요집회를 열고, 1,000번째 수요집회 시 위안부 평화비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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