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세일을 열고 있는 서울 성북구의 한 백화점. 7일 지하 식품매장과 9~10층에 개설된 특설 행사장에는 손님들이 가득했지만 2~8층은 세일기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행사장에서 겨울 외투를 고르고 있던 한 30대 여성 고객은 "전세 만기가 내년에 돌아오는데 작년에 비해 시세가 6,000만원이나 올랐다"면서 "꼭 필요한 패딩 코트 한 점만 사고 사은품을 받아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상가 심지어 면세점까지 연말을 맞아 전례 없는 '폭탄세일'이 쏟아지고 있다. 세일기간은 길어졌고, 세일을 하지 않던 품목들도 할인행사를 시작했으며, 할인률은 훨씬 커졌다. 방학과 크리스마스, 신년으로 이어지는 '연말대목'을 잡기 위한 대대적 판촉행사이지만, 실상은 워낙 빠르게 결빙되고 있는 내수경기의 방증이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우선 백화점들은 현재 진행중인 송년 세일기간을 확 늘렸다. 송년 세일은 매년 열흘 정도 진행됐지만 올해는 17일로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봄까지만 해도 두자릿수의 매출증가세가 이어졌지만 10월엔 3%대로 떨어졌고 11월엔 1~2%까지 추락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송년세일기간을 늘리게 됐다"고 말했다.
좀처럼 정기세일 등에 참가하지 않던 콧대 높은 품목들도 고개를 숙인 채 바겐세일에 동참했다. 워낙 잘 팔려 불황을 몰랐던 아웃도어 브랜드가 대표적인 경우. 롯데백화점의 송년 세일에는 콜럼비아, 블랙야크, 밀레 등이 처음으로 참가했고 신세계 역시 블랙야크와 마운틴하드웨어 등의 아웃도어 브랜드가 세일에 들어갔다. 일부 아웃도어 매장의 겨우 '자존심'때문에 세일에 공식 참여하지는 않지만 막상 손님이 방문하면 현장에서 할인을 해 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명 해외브랜드도 마찬가지. 롯데백화점에서는 멀버리, 에스까다 등 60여개 브랜드가 20~30% 할인하는 시즌오프 세일을 진행 중이다.
대형마트들은 좀처럼 경기를 타지 않는다는 생필품까지 '반값'공세에 나서고 있다. 홈플러스는 전국 125개 점포에서 '연말결산 300대 대표 상품전'을 실시해 올 한해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인기 생필품 300여 종을 최대 50% 할인 판매한다. 롯데마트도 지난 1~6일 사이 전점에서 각종 육류 상품을 최대 50% 가량 싸게 판매해 큰 호응을 얻었다.
면세점 역시 '통 큰'할인에 돌입했다. 신라면세점에서는 '해외명품'급인 구찌 프라다 페레가모 지미추 끌로에 아르마니 등 총 23개 유명 브랜드가 참여하여 세일행사를 진행 중인데, 일부 품목은 반값을 넘어 할인폭이 무려 70%에 달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에트로 구찌 프라다 페라가모 버버리 등 유명 브랜드 37개가 참여해 최대 80%까지 할인 판매한다.
업계의 소비심리가 가라앉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고 지적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10~11월 매출부진은 이상고온 탓을 감안해도 꽤 심각한 상태"라며 "현재로선 겨울철 최대 판매품목인 방한의류 매출확대를 위해 좀 더 강한 추위가 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2%로 2년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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