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하데스(Hades)는 최고신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형제 사이로 지하세계를 관할한다. 명계(冥界)의 지배자인 그의 이름을 곧바로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길하게 여겨 플루토스(Plutos)라는 별칭으로 자주 불렸다. 플루토스는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와 크레타의 청년 이아시온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의 존재로 곡식의 수확을 주관했다. 식물이 땅속에서 영양분을 길어올린 결과가 작물의 수확이니 하데스의 관여를 상정할 만했다. 땅속은 음습한 죽음과 풍요로운 수확을 동시에 상징했지만,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했다.
■ 사회적으로도 지하는 어둡고 우울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극히 일부만 남았지만 지하실 셋방은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떠밀려간 마지막 주거 공간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습기로 눅눅해진 벽지가 떠서 일어나고, 장마철이면 늘 바닥에 물기가 끊이지 않아 비닐장판 아래 깔아둔 신문지를 수시로 갈아야 했다. 이 귀축축한 공간의 음울함은 삶의 변방에 곰팡이로 핀 누추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방수처리 기술이 완벽했다면, 지하셋방은 따뜻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을 나게 해 주는 아늑한 피난 둥지일 수도 있었다.
■ 땅속을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여기려면 이런 기술의 발달을 빼놓을수 없다. 돌과 흙을 파내려 가는 굴착기술도 중요하지만, 인공조명과 방수ㆍ제습ㆍ환기 설비 아니고는 어둠과 물, 질식을 밀어낼 수 없다. 기술 발달과 맞먹는 또 다른 조건이 법적 규제의 완화였다. 토지 소유권은 허공과 지하에 두루 미치므로 아무리 깊어도 남의 땅 아래 인공구조물을 만들기 어려웠다. 타인 소유 토지에 건물ㆍ공작물을 설치할 권리인 지상권을 일정 높이 이상, 일정 깊이 이하로 나눈 '구분지상권'이 1984년 민법에 도입된 이후 기본 제약이 풀렸다.
■ 활용할 토지가 드문 데다 땅값까지 치솟다 보니 더욱 높은 공중, 더욱 깊은 땅속의 개발이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활용도가 큰 새로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경제논리는 수긍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지하 40fm 이하 '고심도 지하' 개발 계획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기존 지하상가를 연결하는 수준은 몰라도 새로 고속철도나 자동차 전용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불안을 자극한다. 고심도 지하의 안전관리 기술이 원전 관리기술보다 앞섰다는 믿음이 없는 한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불안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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