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관리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먼저 청렴결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책임질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라 위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있어야 진정한 선비입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성무(74)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이 최근 <선비평전> (글항아리 발행)이라는 책을 냈다. 조선 500년사를 주도한 선비 집단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탐구이자, 기억할 만한 선비는 과연 누구인지를 소개한 인물평전이다. 선비평전>
절의가 무엇인지 보여준 고려 말 이색으로 시작하는 이 선비 이야기에서 그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신의를 지키려 한 진정한 선비정신의 구현자들이다. 1910년 8월 3일 일본의 조선 합방령이 하달되자 아편을 먹고 자결한 황현 선생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가 죽음을 결심한 것은 '나라가 망했는데 500년 사직에 한 사람의 사대부도 죽지 않아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이 원장은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도 항거하는 사람은 적었던 당시 '국록도 받지 않은' 그가 목숨을 버리며 항거한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말만 있고 실천이 없는 사람, 현실 참여 없이 이념만 설파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려 말 형성돼 조선 중기 사림정치로 완성된 선비 지배체제가 이 같이 고매한 선비정신으로만 충만했던 건 물론 아니다. 조선 사대부들은 정치적 수읽기로 상대를 음해하고 출세를 놓고 분투했다. 성리학적 명분의 완성이라는 이상 추구와 생존을 위한 이전투구가 뒤섞여 있는 것이 실은 조선 선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예를 들어 충의(忠義)를 대변하는 사육신(死六臣)도 애초에는 모두 수양대군 쪽 사람들로, 세조가 즉위해 전제를 휘두르자 이에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원장은 사육신은 사건 자체나 그들이 숙종 때 역사 무대로 복귀하는 과정 모두 권력투쟁의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해석했다.
<선비평전> 은 이 원장이 대학 강단에서 물러난 뒤 2003년 한국역사문화연구원을 만들고 '뿌리회'라는 모임을 조직해 조선 명가(名家)를 연구해온 과정에서 얻은 '낙수(落穗)' 같은 것이라고 한다. 특히 400명 가량의 회원을 둔 '뿌리회'에는 전문 연구자들만 100명이 참여하고 있어 답사와 저술을 통해 명가의 인물과 계보 등을 분석하는 작업을 밀도있게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은 최근 <조선을 이끈 명문가 지도> 라는 책으로 결실을 보았다. 조선을> 선비평전>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사상사, 인물사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21세기가 아시아의 시대라면 그게 걸맞은 아시아적 가치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유교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는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을 맞고 있다. 하지만 누가 권력을 잡든 조선 당쟁사 연구의 권위자인 이 원장의 이 한 마디는 겸허하게 되새겨야 할 듯싶다. "인물은 시대가 낳는 것입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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