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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지 않은 개그 시사 풍자 열풍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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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지 않은 개그 시사 풍자 열풍 '이유'가 있다

입력
2011.12.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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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집배원 4만5,000명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잠시 침묵) 어려운 여건은 누가 만든 걸까요?"

3일 첫 방송한 케이블채널 tvN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 코리아'의 한 대목이다. TV 코미디치고는 강도가 제법 세다. 연출을 맡은 영화감독 장진씨는 뉴스 형식의 코너 '위크엔드 업데이트' 앵커로도 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심의 추진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진두지휘한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1일 개국한 종합편성(종편)채널 등을 상대로 직설화법의 풍자를 쏟아냈다.

같은 날 방송한 SBS '개그투나잇'도 방통심의위와 '벤츠 여검사'를 풍자했다. 강용석 의원의 고소로 오히려 주가가 더 뛴 개그맨 최효종은 4일 KBS 2TV '개그콘서트'의 '사마귀유치원'에서 서민 경제를 위협하는 부동산 정책을 꼬집어 박수를 받았다.

안방극장이 풍자로 넘쳐나고 있다. 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가 새로운 미디어권력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개그콘서트'가 조심스럽게 길을 튼 TV 시사풍자의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이쯤 되면 시사풍자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시사풍자 중에서도 정치 분야가 강세다. 수위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가카(각하)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는 유행어를 낳은 '나꼼수'에는 못 미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TV에선 정치풍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개그투나잇'의 박준형은 "이러다 연말에 SBS 코미디 대상 타시겠다"며 최효종을 고소한 강 의원을 조롱했고, 'SNL 코리아'는 "설마 정권이 안 바뀌겠냐"는 등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든다.

생활개그나 말초적인 웃음에 치중해온 '개그콘서트'가 시사풍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최효종 고소 사건을 집중 풍자한 지난달 26일 방송이 올해 자체 최고 시청률 25.6%(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를 기록한 데 이어, 4일에도 23.8%를 유지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연출을 맡은 서수민 PD는 인기비결에 대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웃음의 뿌리를 공감에 두지 않으면 그저 시시한 유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공감에 뿌리를 둔 유머가 입소문을 타고 더 강력한 공감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데는 정치와 기성 언론의 역할 부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과 교수는 "과거엔 정당정치 안에 희망이란 게 있었는데 정치가 전혀 희망을 주지 못하면서 정치에 대해 냉소와 허무주의에 빠진 대중 스스로 놀이 방식을 만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는 "대중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짚어내지 못한 기존 언론의 영향도 있다"면서 "'나꼼수'는 겉으론 무관심한 듯했던 대중의 뇌리에 잠재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시사풍자 만발의 견인차는 2030세대. 코미디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로 바뀌었다. '개그콘서트'의 30대 시청률(AGB닐슨)은 지난해 11월 평균 9.3%에서 올 11월 15.3%로 껑충 뛰었다. 20대도 5.6%에서 8.2%로 늘었다. 이택광 교수는 "개콘의 '애정남'과 '비대위'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뒤트는 미학적인 지점이 있다. 이를 수용하는 시청자의 수준도 높아져 예전엔 10대가 주 시청자 층이었다면 요즘엔 20, 30대가 즐겨 본다"고 말했다.

정치 풍자의 유행은 정권 말에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정권 초엔 강한 규제로 인해 입을 열지 못하다 레임덕에 접어들면서 정치 풍자가 봇물처럼 터지는 것이다. 'SNL 코리아'의 안상휘 CP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20,30대가 '나꼼수' 등을 통해 정치에 눈을 뜨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의 풍자 대세가 꼭 레임덕 탓은 아니다. 장진 감독은 "자기가 직접 당하지 않았어도 강압적인 검열 분위기 탓에 대중은 시대가 거꾸로 가는 느낌을 가졌다"면서 "그간 막혀있던 걸 터뜨리니 시청자들도 시원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수민 PD도 "대통령의 권력이 약해져서 풍자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정치 풍자가 큰 공감을 일으키는 건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집단적 평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풍자의 계절을 맞아 방송사들은 앞다퉈 새 시사풍자 코미디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프로그램의 풍자 강도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SNL코리아'의 지향을 '타협 없는 중립'으로 표현한 장진 감독은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하고 여야에 치우침 없이 기존 언론과 다른 우리만의 시각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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