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ㆍ2지방선거 직전인 5월, 안덕수 강화군수 후보는 "강화군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군민의 힘을 보여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군수에 당선되고 불과 1년6개월만인 지난 2일 총선에 출마하겠다면서 군수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역 발전을 위해 중앙정치 무대에 진출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중도 하차의 명분이었다. 온천관광단지 건설 등 안 군수 공약 중 상당수는 아직 착수하지도 못했거나 '추진' 상태에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기초단체장들의 줄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가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 출마할 때 "당선되면 임기를 채우면서 지역을 위해 뛰겠다"고 선언했는데도 이 같은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적 야심을 위해 보궐선거 비용을 주민들에게 전가시키면서 행정 공백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현재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거나 사퇴하기로 한 기초단체장은 황주홍 강진군수, 서삼석 무안군수, 노관규 순천시장, 신현국 문경시장, 안덕수 강화군수, 서중현 전 대구 서구청장 등 6명이다. 이 밖에도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시장∙군수∙구청장들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직후보 사퇴 시한(13일)까지 총선에 뛰어드는 기초단체장은 15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관할 구역이 겹치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자치단체장은 일반 공직(90일 전)과 달리 120일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 광역의원 6명과 기초의원 9명도 이미 사퇴했다.
이들은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 지역구가 겹치는 점을 활용해 총선 출마를 위한 징검다리로 단체장직을 악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초단체장들이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해 이름을 알리고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단체장직을 금배지를 달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의 중도 사퇴에 따른 보궐선거 실시로 선거구당 6억원이 넘는 혈세를 또 퍼붓게 됐다. 12명의 기초단체장이 총선을 앞두고 사퇴해 6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2004년에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선관위가 집행한 선거경비는 83억2,043만원(평균 6억9,337만원)에 달했다. 15명이 사퇴해 보선을 치른다고 가정하면 100억원이 넘는 혈세가 들게 된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기초단체장들이 지역 주민의 호주머니에서 보선 비용을 빼내는 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해당 단체장을 공천한 정당이 해당 지역 보선에 후보를 공천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선거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정권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스스로 사퇴'한 기초단체장들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고,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도 "이 문제에 대한 당내 논의에 즉각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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