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김수한(39ㆍ가명)씨는 폭설이 몰아쳐도 망설임 없이 차를 몰고 출근한다.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연결된 지하 50m 깊이의 8차선대로가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퍼져있기 때문이다. 정체도 거의 없다. 퇴근 후에 김씨는 야구연습을 하러 아들과 함께 지하 야구장을 찾는다. 지하 150㎙에 위치한 야구장은 평균 24도를 유지하며 태양광을 받고 자란 잔디가 늘 푸릇푸릇해 운동할 맛이 난다."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등장하는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이미 지하도시뿐만 아니라 지하철도ㆍ도로 건설이 임박했다. 이와 관련된 규제를 담은 법안도 현재 정부에서 제정을 검토 중이다. 지하도시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지하화 추진 현황
지하 개발 움직임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활발하다. 이미 지상공간이 포화상태고 땅값도 천정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는 공사비가 많이 들긴 하지만 땅값이 들지 않는다. 실제 서울 강남역 일대 노른자위 땅 밑에 초대형 복합상권을 만드는 이른바 '강남지하도시'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 본격 시동을 건다. 양재역(3호선)에서 강남역(2호선)ㆍ신논현역(9호선)을 거쳐 논현역(7호선)에 이르는 총 3㎞ 강남대로 구간을 지하도시로 개발하는 방안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지하도시 조성을 위한 개발계획 수립 용역을 올 하반기 공식 발주할 계획"이라며 "멀티플렉스, 공연장 등 문화시설, 지하광장, 상가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산공원과 용산역, 국제업무지구 주변 40만6,500㎡에도 대형 지하도시가 건설된다. 코엑스몰처럼 백화점, 호텔, 무역센터 전시장 등이 서로 연결돼있고, 면적은 코엑스몰에 비해 6배나 넓다. 대학들도 지하캠퍼스를 조성 중이다. 캠퍼스 내에 건물을 새로 지을 땅이 더 이상 남지 않아, 지하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미 몇몇 대학에는 지하3~6층에 영화관을 비롯한 문화공간과 각종 편의시설, 강의실, 24시간 열람실, 세미나실 등을 구축했다.
서울시도 지하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시내 지하공간의 체계적 활용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을 발주했다. 서울시는 마스터플랜을 통해 지하공간의 설계ㆍ관리지침 및 방재기준, 지하 네트워크 조성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숭례문과 을지로, 회현, 명동의 지하상가를 서로 연결하는 '도심 지하공간 네트워크 구축 사업'도 추진중이다. 총 면적 4만5,443㎡의 대규모 지하상권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밖에도 서울의 상습 교통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 남북 간 3개 축과 동서 간 3개 축 등 6개 노선의 'U-스마트웨이'사업을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경기도도 지하 50㎙에 건설된 터널을 시속 200km로 달리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 건설을 추진중이다. 현재 한국개발연구원의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고시, 민간제안서 접수, 실시계획 인가 등의 절차를 거쳐 이르면 2013년 9월쯤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하 난개발 방지 법안도 추진
국토해양부는 지하공간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관리하기 위한 법률 제정을 검토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의 지하공공보도시설에 대해 각각 흩어져 있는 법규를 상호 보완해 일관성 있게 지하공간을 개발하기 위한 지침"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미 지하공간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제화 연구 연구용역을 지난해 말 마쳤다. 그 동안 개별건물 또는 블록 단위로 조성됐던 지하공간을 공공용지와 민간개발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불합리한 법 제도를 개선해 일관성 있는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지하 개발을 우려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상 개발과 비교해 개발 편익이 높지 않은데다, 지하공간이 인체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할 때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하 개발이 활발한 것은 법에서 용적률을 계산할 때 지하층 면적을 계산하지 않는 관행 때문이지 수익이 있어서가 아니다"며 "땅이 부족하다면 건물을 더 높이면 된다. 지하는 한번 개발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꼭 필요한 곳이 아니라면 굳이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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