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ㆍ2 지방선거 때 후보들에게 국회의원선거 출마 가능성을 물으면, 백이면 백 모두 “절대 그럴 일 없다. 나는 한눈 팔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불과 1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요즘 일부 기초단체장들이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잇따라 사퇴하고 있으니, 그들은 건망증이 심한 것인가 아니면 얼굴이 두꺼운 것인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금치산자, 100만원 벌금형 이상을 선고 받고 일정기간이 지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면 25세 이상 국민 누구나 출마할 수 있다. 기초단체장도 마찬가지다. 피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선거 120일 전에 사퇴하면 총선에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법 이상의 도덕적 신뢰와 명분을 요구하고 있다. 안철수 돌풍에서 확인된 기성 정치권의 추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밥 먹듯 어기는 거짓말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더 좋은 나라, 더 올바른 정치를 위해 총선에 출마한다는 기초단체장들의 변(辯)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일단 지방선거 때의 약속을 어긴 것이다. 시작부터 거짓말을 하는 이들이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어떻게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사퇴하면서 생길 행정공백, 보궐선거 비용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점이다. 단체장이 사퇴한 시나 군은 이미 몇 달 전부터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공무원들이 손을 놓고 누가 차기 단체장이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책임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부작용을 초래할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 군수들이 국회의원이 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지역주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열심히 일한 뒤 임기를 마치고 출마하면 된다.
일각에서는 총선 출마를 위한 단체장의 사퇴 러시를 제어하기 위해 보궐선거 비용을 청구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제어장치보다 더 강력한 것은 주민들의 엄정한 판단이라고 본다. 이래도 뽑고 저래도 뽑으면 결국 주민 스스로가 무시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