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59) 총리가 이끄는 러시아의 집권 통합러시아당이 국가두마(하원) 의원의 과반 확보에 가까스로 성공했으나 개헌에 필요한 의석 수를 채우는 데는 실패했다. 내년 3월 대선에 출마하려는 푸틴의 리더십도 큰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선거관리위원회는 총선 결과 통합러시아당이 49.54%(96% 개표 기준)의 득표율을 기록, 제 1당이 됐다고 5일 밝혔다. 그러나 이는 2007년 총선에 비해 약 14% 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푸틴이 대통령과 총리를 역임한 2000년 이후 얻은 득표율 가운데 가장 낮다.
최대 야당인 러시아연방공산당은 19.16%의 득표율을 기록해 2007년에 비해 8% 포인트 이상 올랐으며 의석도 92석을 확보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정의러시아당이 13.22%,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이 11.66%를 각각 얻었다.
총선 결과 통합러시아당은 450석의 국가두마 의석 가운데 238석을 확보, 절반을 넘겼지만 2007년 315석보다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 개헌에 필요한 300석에도 미치지 못했다.
선거 결과를 놓고는 푸틴의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뇌물수수 등 만연한 부정부패로 정치 불신이 심각한데도 푸틴이 내년 3월 대선에 출마하기로 한 것이 결정타를 날렸다. 푸틴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연임을 통해 최대 2024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할 수 있다. 마리아 리프만 카네기 모스크바센터 연구원은 "푸틴 체제의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선거"라며 "여당은 더 이상 확고부동한 정부가 아니다"고 말했다.
젊은 유권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해 정부 비판과 부정선거 정보를 공유한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유권자들은 투표일인 4일 투표 용지와 투표함을 조작한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고,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모스크바 투표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대리투표 하는 장면을 찍어 유포함으로써 여당에 대한 반대표를 유도했다.
이번 총선으로 여당이 개헌정족수를 확보하지 못해 러시아는 여야가 적절한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연방공산당 당수는 "향후 하원에서 새로운 정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야 타협이 우선돼야 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경제학자 키릴 로고프는 "총선 결과에 낙심했을 푸틴이 정치를 더 강하게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선거에서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자행됐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러시아 내 115개 투표소에 감시요원을 파견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투표함에 기표용지를 불법 투입하는 등의 절차 위반 및 조작 행위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OSCE 선거 감시 책임자인 하이디 탈리아비니는 "이번 선거는 운동경기로 치자면 한 쪽으로 경기장이 경사져 있어서 어느 한 쪽(여당)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라고 평가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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