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51) 현대카드 사장은 '신용카드 전도사'로 불린다. 하루에도 30분 이상 할애하는 트위터를 자사 카드 브랜드를 홍보하는데 적극 활용한다. 최근 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박이 거세지자, 트위터에서'젖소목장' 비유로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카드업계를 적극 대변하기도 했다. 젖소목장(카드사)이 우유판매(가맹점 수수료)는 적자라서 정작 소 파는 일(카드론 등 대출)이 주업이 됐는데, 소 장사로 돈을 버니 우유 값을 더 낮추라는 처사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대다수 카드사들은 정 사장의 '용감한 발언'에 내심 박수를 쳤다.
그런데 그가 요즘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모회사인 현대자동차가 카드사들에게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면서, 현대카드는 물론이고 다른 카드사들도 모두 백기 투항한 것이다. 지금까지 정 사장이 공개적으로 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적극 반대해 왔는데, 정작 모회사가 카드업계를 압박하고 나섰으니 입장이 난처할 수밖에 없다.
현대카드를 보는 다른 카드사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현대차가 정몽구 회장의 사위인 정 사장이 경영하는 현대카드 측과 사전에 의견을 나눴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차의 압박에 굴복하면서 카드사는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금융회사'라는 고약한 낙인까지 찍혔다. 더구나 현대차가 물꼬를 텄으니 외국계 자동차 회사는 물론이고 다른 대기업들의 수수료 인하 공세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 카드사 임원은 "왜 하필이면 지금처럼 카드업계가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현대카드의 모회사인 현대차가 선수를 치고 나왔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카드사들이 현대차의 인하 요구를 수용한 것은 적절치 않고 신중치 못한 처사"라고 거들었다.
정 사장도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정 사장도 담당 임원이 현대차에서 보내온 수수료 인하 공문을 보고한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며 "현대차 측과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오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경위야 어찌 됐든, 현대차와 중소가맹점들의 요구는 좀 달리 봐야 한다는 게 정 사장의 생각이다. 정 사장은 "자동차나 대형마트는 수수료가 낮아도 남는 것이 있지만 중소가맹점은 수수료를 높게 받아도 남는 게 없다"며 "자동차나 대형마트 카드 이용고객의 연체율과 중소가맹점 연체율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대차와의 특수관계를 배제하고서라도 현대차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혁세 원장이 "현대차 같은 대기업의 수수료부터 인하하면 경제적 약자와 소비자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며 현대차 요구를 수용한 카드사를 비판한 것과는 배치되는 논리다.
물론 정 사장도 중소가맹점 지원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원 대상에 대한 뚜렷한 기준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수수료 인하는 카드사가 밑지고 지원하는 것인 만큼 정확히 어떤 대상을 얼마나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지 무턱대고 다 지원하자고 압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서민 지원 책임을 모두 카드업계만 져야 하느냐"며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기도 한다.
현대카드가 카드업계의 과당경쟁, 실적경쟁을 주도한다는 시선 역시 정 사장으로선 부담스럽다. 그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금융은 자제의 미학이기도 하다. 가다가 스스로 멈춰야 한다. 금융은 손절매의 미학이기도 하다"며 금융에서 리스크 관리와 절제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실제 2007년 이후 현대카드의 연체율은 업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카드업계와 금융당국, 심지어 모기업으로부터도 견제와 오해를 받고 있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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