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를 비롯해서 외환은행매각 사태를 둘러싼 국내 갈등 문제의 이면에 심각한 프레이밍(틀짜기)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틀짜기는 자기가 미리 짜놓은 틀 안에서 판단하는 인간의 심리현상인데, 중첩된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면 심각한 소통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즉, 한미 FTA가 '미국경제에 예속되는 것'이라는 틀짜기에 갇히면 어떠한 합리적 논거도 수용되지 않고, 론스타를 '먹튀라는 악의 축'의 틀짜기에 가둬버리면 모든 주주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옴짝달싹 못한다.
사회통합 저해 요인들만 난무
틀짜기에 갇히면 동일한 현상도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전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심리적 실험이나 사회현상이 많다. 1983년 KAL 여객기가 항로를 이탈해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공군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어 269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소련은 미 공군 정찰기의 침범으로 오인했다고 변명했지만, 미국을 위시한 세계 각국은 소련의 만행을 극렬히 규탄했다. 그런데 88년 유사한 사건이 이란상공에서 벌어졌다. 이란항공 665 여객기가 호루무스 해협 상공에서 작전중이던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이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어 290명 사망한 사건에 대해, 미국은 전시상황의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해군 전투원이 여객기를 전투기로 오판했다고 결론내리고 발사전투원에게는 영웅적 행동이라고 치하해 메달을 수여했다. '미국은 좋은 나라이고 소련은 악의 축'이라는 틀을 짜면, 유사한 행위를 미국이 하면 용서가 되고 소련이 하면 폭거가 되는 것이다. 한미 FTA를 둘러싼 분열이 국회내 최루탄에서 국회밖 물대포를 넘어 분쟁의 판결자인 법원판사들까지 가담해서 오히려 분쟁을 증폭되는 이유는 사회지도층들이 사회통합에 저해되는 틀짜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찬반 양측 모두 극단적인 자기주장만을 하지만, FTA는 시장이 넓어지는 대신 경쟁이 훨씬 더 격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틀짜기를 벗어나 냉철하게 판단하면, FTA의 성패여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시스템에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 8년을 끌어왔던 외환은행사태도 최초의 단추를 잘못끼운 금융관료들의 실책으로 아직도 소모적인 쟁투가 진행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먹튀'라는 프레임으로 계속 론스타의 치명적 약점인 산업자본적 특성을 물고 늘어지고 있고, 다른 한쪽은 소위 '글로벌표준'이라는 프레임으로 귀를 막고 있다. 그러나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틀짜기에서 벗어나, 정부는 환골탈태의 각오로 미숙한 일처리는 사과하고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은행의 대주주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제도개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 외환은행 임직원들은'먹튀' 프레이밍에서 벗어나 하나금융과의 원만한 통합을 이루어 내도록 노력해 중소기업에 활력을 주고 금융소비자들에게 신뢰받는 은행으로 거듭나야 할 때이다. 이제 론스타가 한국내 정서를 포함해 대법원 판결과 금융위의 매각명령에 순응, 원래 가격보다 4,903억원을 낮춰 매각하고 떠나려는데 이제는 보내 줄 때가 됐다. 또한 론스타-하나금융간 가격협상은 법질서의 틀 내에서 진행되는 사적계약이므로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이에 대한 시비보다는 오히려 이제 금융당국은 론스타의 세금문제를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처리하여 조세정의 차원에서의 국익과 주권을 철저히 확보해야 한다.
전문가부터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야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 사회통합이라고 모든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부터 경제사회 이슈에 대해 틀짜기의 덫에 걸려서 소통의 장애를 일으키고 사회통합을 저해하지 않도록 먼저 솔선해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언론이나 정치권도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이용한 프레이밍 전략을 사용해 소탐대실해서는 결코 안된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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