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은경(42)씨는 요즘 반찬통을 유리 재질만 골라 쓴다. 유리 반찬통은 플라스틱보다 2, 3배 비싸지만, 플라스틱에서 혹시 몸에 해로운 물질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젖병을 둘러싼 유해 논란이 번지면서 생활용품, 특히 식품용기를 모두 유리 제품으로 바꿔야 하나 갈등하는 주부들이 적지 않다. 플라스틱 생산업계에선 '플라스틱 공포'가 점점 과장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플라스틱, 얼마나 위험한 걸까. 어떻게 써야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성호르몬에 영향 가능성
논란이 된 물질은 젖병에서 나온 비스페놀A(BPA). 1891년 처음 만들어진 BPA는 플라스틱인 폴리카보네이트의 원료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열이나 충격에 비교적 잘 견디고 전기가 잘 통하지 않으며 가볍고 투명한 특성 때문에 전기부품이나 기계부품에도 많이 쓰인다.
문제는 BPA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산성물질이나 높은 온도를 만나면 미량의 BPA가 녹아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1930년대부터 동물실험에서 이렇게 나온 BPA가 성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잇따랐다. BPA를 정상적인 호르몬 분비를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의 논란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BPA를 '환경호르몬 추정 물질'로 본다. 명백히 환경호르몬이라는 근거는 부족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도 플라스틱을 만들 때 넣을 수 있는 BPA의 양을 정해놓았다. 그런데 최근 캐나다 유럽연합 등에서 젖병에는 아예 BPA를 쓸 수 없도록 규제하기 시작했다. 영유아가 어른보다 화학물질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청도 내년부터 BPA 함유 젖병의 제조ㆍ수입ㆍ판매를 제한하겠다고 지난 3월 발표했다.
성 조숙증 원인 vs 근거 불충분
사실 BPA의 유해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BPA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알려진 게 성 조숙증이다. 한양대 생명과학부 계명찬 교수팀은 2008년BPA에 계속 노출된 생쥐가 그렇지 않은 생쥐에 비해 성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됐다는 연구 논문을 내놨다. 반면 지난해 10월 식약청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성 조숙증 여자아이 140명과 건강한 여아 20명의 혈액 속 BPA 농도를 측정한 결과, 오히려 건강한 여아들이 높게 나타났다. 동물실험 결과와 달리 실제 인체 사례에선 BPA와 성 조숙증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BPA 유해성 논란은 통조림에도 불똥이 튀었다. 통조림 캔 안쪽은 보통 플라스틱으로 코팅을 하는데, 이 역시 BPA를 원료로 만들기 때문에 음식물에 BPA가 녹아 나올지 모른다는 추측이다.
그러나 2009년 부산대 약학과 김형식 교수팀은 시판 중인 통조림 61개를 모아 BPA를 검출해본 결과 39개에서 미량의 BPA가 나왔으며, 몸무게 60kg인 성인이 39개에서 검출된 BPA를 전량 섭취하더라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BPA 일일 허용량(몸무게 1 kg당 50㎍)의 3%에 그치는 수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환경운동연합 이지현 사무처장은 "건강문제는 한 번 터지고 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일일 허용량을 넘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전한 사용법 숙지해야
BPA의 유해성 정도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환경호르몬처럼 인체의 내분비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데는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한다. 이들은 다만 위험성이 과장돼 플라스틱 전체에 대한 과도한 공포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플라스틱 제품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플라스틱 젖병의 경우 내부에 흠집이 나면 유해물질이 빠져나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끓는 물을 넣어 사용하거나 병째 전자레인지로 데우는 일은 삼가야 한다. 또 끓는 물로 소독할 때는 2~3분, 전기소독기를 사용할 경우 105℃가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가정용 랩을 식품 포장용으로 사용할 때는 지방 성분이 많은 음식이나 갓 튀긴 음식을 넣지 않는 게 좋다.
식약청은 "이들 주의사항을 잘 지켜 사용하면 BPA가 들어간 젖병이라도 사실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식약청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유아용 젖병 15개를 대상으로 BPA 용출 여부를 조사한 결과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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