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사이언스/벤 골드메이커 지음·강미경 옮김/공존 발행·448쪽·1만8000원
피부에 신경 쓰는 여성이라면 수분크림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이 크림은 수분 증발을 막아 피부를 촉촉하게 한다. 개중에는 피부에 산소를 전달한다고 광고하는 제품도 있다. 노폐물을 제거하고 피부를 깨끗이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주 원료는 물(H₂O)보다 산소가 한 개 더 많은 과산화수소(H₂O₂)다.
사람의 피부에는 산소를 구석구석까지 전하는 모세혈관이 촘촘히 퍼져있다. 우리 몸은 균형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산소 농도가 낮은 부위엔 혈액을 더 보내 산소를 공급한다. 수분크림을 바른 부위에서 순간적으로 산소 농도가 높아졌다면 그쪽으로 가는 혈액량은 줄어든다. 수분크림을 발라도 결국 피부의 산소 농도는 일정하게 유지돼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단 얘기다. 크림을 썼을 때 피부가 촉촉해지고 맨들맨들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과산화수소가 피부의 각질을 녹여 없애주기 때문이다.
별 다른 효과가 없음에도 이들 제품은 과학적이란 수식어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과학적이다'란 말은 곧 '검증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과학은 하나의 전문영역으로 일반 사람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분야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꼼수'를 부리는 이들이 넘쳐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인 양 거짓 주장을 퍼트리거나 엉터리 제품을 만들어 파는 '과학 장사치'가 그들이다.
영국 국립의료원(NHS)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과학 칼럼니스트인 벤 골드에이커가 쓴 <배드 사이언스> 는 여기에 초점을 뒀다. 이 책은 '우리를 속이고 주머니를 털어가는 그들의 엉터리 과학'이란 소개처럼 과학으로 장사하는 사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배드>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누리는 종합비타민제 등 항산화제의 허와 실도 지적한다. 항산화제는 몸 속의 활성산소를 없애는 물질이다. 활성산소는 정상 세포를 파괴하거나 DNA를 손상시켜 노화와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저자는 활성산소가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유해한 세균이 들어왔을 때 면역세포는 활성산소를 이용해 불청객을 물리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나치게 많이 섭취한 항산화제는 그냥 배설된다. 비타민이 몸에 좋다고 많이 먹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저자는 똑똑한 사람들조차 멍청한 연구와 이론을 믿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재확인해주는 정보만 수용하려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독자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이유로 황당하거나 공포를 조장하는 기사를 배설하는 과학 기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작가의 처녀작이지만 여느 과학책과 달리 술술 읽힌다. 과학 장사치를 겨누는 펜 끝은 날카롭고, 책에 담긴 수많은 황당한 사례가 흥미를 돋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009년 선정한 '10년간 최고의 책 100권'에 들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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