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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인류를 위한 도박' 신약개발… 성공률 0.02%, 그래도 멈출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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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인류를 위한 도박' 신약개발… 성공률 0.02%, 그래도 멈출 순 없다

입력
2011.12.0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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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봐라, 돈이 나오나"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땅 파서 돈 나올' 확률에 도전하는 곳이 있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들이다. 신약개발 확률은 통상 0.02% 정도로 본다. 약 하나가 탄생하려면 약 1만여 개 후보물질을 샅샅이 훑어야 한다. 기간으로 치면 최소 10년. 금광개발 확률이 10%, 유전개발 확률은 5%라고 하니, 신약개발은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개발에 성공한 신약은 약 10~20년간 매출이 발생해 투자대비 10배 이상의 천문학적 수익을 안겨준다.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경제논리 이상의 가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지금 이 순간도 전세계 수백만 명의 연구진들이 만개 이상의 신약개발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다.

1991년 3월 경기 군포시의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에서 회의가 열렸다. 약효가 빨리 나타나는 위산분비 억제제를 만들자는 한 연구원의 제안 때문. 당시 위궤양치료제 시장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이 있었지만 효과가 늦고 장기간 위산 분비를 억제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던 터였다.

회의장은 반대 의견이 넘쳤다. "외국에서도 못 푼 숙제를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당시는 국산 신약이 전무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대체 약물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며 연구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14년 간의 길고 긴 여정의 출발이었다. 수십 명의 연구진들은 약물 데이터를 돌리고 또 돌렸다. 그러다 'YH1238'이라는 탄소화합물에 주목하고 바로 동물 실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물질을 섭취한 실험용 개 비글(Beagle)은 계속 복통을 일으켰다. 연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시 수년 동안 740여 개 물질에 대한 동물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엔 코드명'YH1885'라는 독성이 없는 물질을 추출했다. 그런데 물질의 인체 흡수력이 떨어지고 고용량에서 동물시험을 진행할 때는 부작용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낙담했다. 이 물질로 신약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던 다국적 제약회사도 가능성이 낮다며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당시 위궤양치료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은 대부분 심한 위장병에 걸렸다. 한 연구원은 "연구를 하면서 위궤양 치료효과가 있는 화합물을 흡입했을 테니 내성이 생겨 치료도 어려울 것이라는 농담이 돌았다"며 "위장병까지 시달리니 위궤양치료제 개발에 꼭 성공하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2년. 드디어 한 모형이 '대규모 임상실험 가능성'을 결정하는 유효성 테스트에 합격했다. 이후 3년간 임상실험을 거친 뒤 유한양행은 2005년 식약청에서 신약 제조 허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단기 치료가 가능한 위산억제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연구 기간 14년 동안 총 500억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쏟아 부은 레바넥스는 출시 첫해에만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런 극적인 성공 사례도 있지만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특히 지난 2008년부터 약 2년 사이 국내 제약사들에게는 5대 신약 후보물질이 모두 개발 중단되는 시련이 닥쳤다. LG생명과학의 C형 간염 치료제도 그 중에 하나. LG생명과학은 간 손상을 치료하고 간경화, 간암으로의 진행을 막는 차세대 간질환치료제를 개발하겠다며 수년 간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그러다 2007년 11월 신약후보 물질에 대해 임상 1상을 마친 뒤 길리어드에 기술을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길리어드는 이를 C형 간염 및 비알콜성 지방간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 2상 도중에 일부 부작용을 발견해 개발을 중단했다. LG생명과학은 기술 수출로 2,000만달러를 받았지만 임상 중단으로 신약 출시에 따른 기술료는 받지 못했다.

해외 제약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6년 미국계 다국적제약사인 화이자는 8억 달러를 들여 개발해오던 콜레스테롤 약물 개발 '토세프라핍(torcetrapib)'의 모든 임상실험과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제품은 단일의약품 세계 최대 매출을 기록한 '리피토'의 후속 약품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실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측은 7,500명을 대상으로 약물을 투여한 결과 82명의 환자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는 리피토를 투여한 환자의 사망자(51명)보다 30여명이 많은 수치. 화이자는 결국 모든 임상기관에 즉각 약물 투여 중단을 요구했다. 환자에 대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조치였다. 이로 인해 화이자는 주가는 10% 이상 추락하고, 회사측은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지 않은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약개발 성공은 때때로 로또당첨이나 도박에 비유될 정도로 지난한 작업"이라며 "그러나 인류를 위해 분명 가치 있는 도박이기 때문에 쉽게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신약 현황은?

신약 개발은 크게 기초탐색 과정과 전(前)임상, 임상, 신약 허가 신청 등의 단계로 나뉜다. 국내에서는 1999년 SK제약의 항암제 '선플라주'가 처음으로 식약청의 제조 허가를 받았으며, 현재까지 모두 17개의 약품이 신약으로 공인 받았다. 미 식품의약국(FDA)에 신약으로 승인된 약은 LG생명과학의 '팩티브'가 유일하다. 동아제약의 '스티렌'은 국내 신약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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