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인 1998년 1월 방한 당시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미 재무차관이었다. 우리에게 외채협상의 조기 타결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조건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방문에서 그는 방약무인한 태도로 많은 뒷말을 남겼다. 한 경제관료의 회상이다. "그는 거대한 몸집을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기댄 채 항복할 건지 죽을 건지 선택하라는 식으로 우리를 몰아붙였다. 굴욕스러웠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안간힘을 쓰던 우리에게 서머스가 요구한 글로벌 스탠더드와 자유시장경제 개혁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
■ 서머스는 이처럼 우리에겐 IMF 체제를 관통한 이른바 자유시장경제 개혁의 강요자로 남아 있다. 당시 미국이 전세계에 주장한 자유시장경제의 정당성은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 구축한 시카고학파의 이론에 의해 뒷받침됐다. 과거 케인즈 경제학에 맞선 그들은 자유시장경제야말로 자원 배분과 소득 분배를 가장 효율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정책화한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이론은 클린턴 행정부에 이르러 미국 경제 역사상 최장기 호황을 일구며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 불과 28세에 하버드대 종신교수직을 따낼 정도로 탁월함을 인정 받았던 서머스는 이때의 인플레이션 없는 최장기 호황에 고무돼 "미국은 로마 이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라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감한 규제 완화와 장기적인 통화 완화 기조에 힘입은 호황이 저물면서 신자유주의체제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엔론 사태와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방임된 시장의 위험을 일깨웠고, 중산층의 몰락과 경제 양극화의 심화는 올 들어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미증유의 대중 시위까지 야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으로서 지난해까지 정책을 이끌었던 서머스가 마침내 신자유주의체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경제가 성장하기만 하면 불평등도 완화될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이라며 정부와 공공의 역할을 주문했다. 특히 공정성을 촉진하는 세제개혁, 부자들에 대한 특혜의 제한, 대학교육 지원 등에 대한 공공부문의 역할 확대 등을 요구한 건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읽힌다. 서머스의 미묘한 변신이 신자유주의체제의 종언을 고하는 추도사가 된 듯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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