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사람/ TV 복근타령 '王짜증' 채널마다 툭하면 스타 몸매 노출 강요 "보셨죠…죽이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사람/ TV 복근타령 '王짜증' 채널마다 툭하면 스타 몸매 노출 강요 "보셨죠…죽이죠"

입력
2011.12.02 11:17
0 0

한 케이블TV 방송 프로그램. 영화배우를 불러다 놓고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는 포맷인데 이날은 꽤 유명한 남자 스타 한 명이 나왔다. 한참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던 여자 MC가 갑자기 한마디 툭 던진다. "복근 보여 줘." 내내 복근 소리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참 뜬금없었다. 그러나 그 배우는 '이게 웬 황당 시튜에이션이냐'는 듯 샐쭉한 표정을 짓더니 복근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자 MC는 다시 재촉했다. "한번 보여 줘."복근에 완전히 맛이 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도 다시 거부하자 상황은 종료.

방송이 스타들의 복근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복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이다. 이런 섹스 마케팅이 과연 계속돼도 좋은 것일까. 혹시 우리 사회를 흠뻑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공중파 TV도 이 끈적끈적한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 공중파의 드라마. 재벌이 망나니 아들에게 묵직한 뭔가로 한 방 먹이려는데 옆에 서 있던 망나니의 사촌형이 머리를 훅 내민다. 둔기 작열. 머리에선 피 철철. 그런데 갑자기 신이 목욕탕으로 뿅 바뀌더니 머리 터진 이 사람이 옷 벗고 울면서 샤워를 한다. 물이 줄줄 떨어지는 그의 몸을 카메라는 마치 애무라도 하는 듯 위에서 아래로 죽 훑는다. 그리곤 강렬한 복근에 이르러서는 낯이 화끈거릴 정도로 오랜 시간을 머무른다. 재벌에게 아들 대신 맞고 설움에 복받치는 모습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왜 굳이 목욕탕인가. 그리고 왜 그리 몸과 복근은 비춰 대는 것인가. 참말로 이해 불가능이었다.

방송이 복근 장사가 어디 연예인에만 그치겠는가. 스포츠 스타도 신나게 팔아먹는다. 한 케이블 TV의 오락 프로그램. 축구 선수들을 초대해 게임을 하는데 도중에 복근이 드러나자 자막에 이렇게 뜬다. '와, 우, 예, 쥑이네.'이건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한국 사회에선 언제부턴가 섹시한 사람이 사회적 파워까지 갖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리고 작금의 시대에 섹시함의 본질은 복근이다. 그런데 복근이 권력이란 요상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 방송이다.

이에 대해 방송 비평가 전일구씨는 "방송이 복근을 비출수록 사람들은 복근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며 "정신적 아름다움 같은 인간을 평가하는 핵심적 요소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돼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나이 어린 청소년들은 방송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 크다. 전씨는 "아이들 때부터 섹시함과 복근의 권위를 수용하게 되면 나중에 커도 이런 인식이 바뀌기 힘들다"고 말했다.

물론 방송이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에 맞춘 것이란 반론도 있다. 하지만 방송학자들 사이에서 방송이 개인적, 사회적 성향과 뒤섞이면서 문제의 상황을 자극한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전씨는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너나 나도 같은 것 사고, 너도 나도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돼 있다"고 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