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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똥 박사' 박완철 KIST 책임연구원 "구린내 난다구요? 내게는 돈 냄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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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똥 박사' 박완철 KIST 책임연구원 "구린내 난다구요? 내게는 돈 냄새예요"

입력
2011.12.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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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만큼 좋은 게 똥꿈이다. 꿈에서 황금빛 똥이 덮치면 하는 일마다 성공한다고 한다. 마당에 똥이 가득 하면 부귀영화를 누릴 운세란다. 고스톱에서도 똥광은 행운을 뜻한다.

현실에선 좀 다르다. 똥은 어디까지나 오물이다. 구린내 나고 구더기가 사는. 그런데 박완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30년간 똥만 만졌다. 인분, 가축 분뇨 정화와 관련해 갖고 있는 특허만 32개. 말 그대로 '똥 박사'다.

그의 명함에는 'wcpark'으로 시작하는 e메일 주소가 박혀 있다. 완철이란 이름의 앞 글자를 딴 것이겠지만, 'wc'란 말이 그의 30년 연구 인생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wc는 화장실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똥과의 인연은 "1980년대 초반 한강 개발과 함께 시작됐다"고 했다. 한강 유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가정에서 흘러나온 오ㆍ폐수가 한강을 오염시킬까 우려한 정부는 KIST에 특명을 내렸다. 가정에 설치한 분뇨정화기를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KIST에는 해외 유명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과학기술 강국을 꿈꾸며 몰려들어 로봇 등 첨단기술 개발에 관심이 컸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똥을 잘 정화할 수 있을지 연구하라니….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81년 KIST에 들어온 '초짜 박사'가 손을 들었다. "경북 상주의 시골에서 자랄 적에 재래식 화장실에서 인분을 퍼서 밭에 퇴비로 주고 했거든. 그래선지 사람 똥에 대한 거리감이 없던 제가 하겠다고 했죠."

막상 손은 들었지만 똥 연구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먼저 '순수한 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분 처리장에서 퍼낸 똥에는 휴지, 담배꽁초가 들어 있기 일쑤였다. "똥만 있어야 정화 실험을 할 수 있는데, 인분 처리장에서 퍼온 인분엔 불순물이 많이 들어있는 거예요. 별 수 있나요? 고무장갑 끼고 일일이 걸러냈지."

'싱싱한 똥'을 유지하는 일도 힘들었다. 당시만 해도 곧잘 정전이 됐다. 정전이면 똥을 보관하던 냉장고와 대형 환풍기가 멈췄다. 똥은 이내 썩기 시작했다. 말도 못할 구린내가 연구원에 진동했다. 그때마다 "냄새 난다"는 말을 들었지만 넉살 좋게 웃어 넘겼다. 하지만 "KIST 같은 곳에서 똥 정화 연구나 해야 하냐"는 핀잔은 대못이 돼 그의 가슴을 쑤셨다.

그래도 박 연구원은 "매일 아침이면 오늘은 똥이 얼마나 분해됐을까 보러 가는 게 즐거워 남들보다 1시간 일찍 20년 넘게 출근했다"고 했다. 특히 1994년 10월 그가 차를 몰고 건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곤 "많은 일을 하라는 뜻이구나"란 생각에 더욱 열심히 똥을 들여다봤다.

똥은 그의 연구 인생을 풍요롭게 했다. 그가 개발한 축산정화조는 전국 5,000여 농가에, 오수정화조는 2만여호에 설치됐다. 지금껏 발명한 게 여럿이지만 그중에 제일은 부엽토(나뭇잎이 썩어 만들어진 흙)에서 찾은 미생물 10종으로 만든 분뇨 분해제란다.

'바실러스'라 불리는 이 미생물은 평소에는 물질을 분해하다가 환경이 나빠지면 둥근 포자 상태로 변해 대사활동을 멈춘다. 그러다가 살 만한 환경이 되면 다시 살아난다. 고체 상태인 분뇨 분해제에는 미생물 수천억 마리가 포자 상태로 있다. 정화조에 넣으면 고체가 녹으면서 따라 나온 미생물이 되살아나 분뇨를 분해한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미생물보다 분해 효율이 10배 이상 높고, 분해 과정에서 냄새도 나지 않는다. 현재 전국 분뇨, 하수처리장 700여 곳에서 이 분해제를 쓰고 있다. KIST는 박 연구원 덕에 기술 이전료로 15억원을 벌었다.

오전부터 이어진 똥 얘기에 신이 난 박 연구원이 "진짜 똥 박사 다 됐다"며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줬다. 똥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똥 중에 제일 독한 똥은 닭 똥이란다.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 제일 높기 때문. BOD가 높다는 건 오염물질(유기물)이 많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은 돼지 똥, 소 똥, 사람 똥 순이다. 하지만 "닭 똥은 양이 적어 제일 큰 오염원은 돼지 똥"이다. 사람 똥은 개중에 '순한 똥'인 셈이다.

인터뷰 말미에 박 연구원은 "30년 연구 외길을 걷게 해준 KIST에 항상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5년 뒤면 정년인데 노하우를 100% 전해줄 사람이 없다"고 걱정했다. 연신 즐거워하던 그의 목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작아졌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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