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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민주화' 밀고자 된 서방 감시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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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민주화' 밀고자 된 서방 감시산업

입력
2011.12.0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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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반정부 활동가 라미 나클레(29)는 지난해 온라인 신문에 시리아의 인권실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비밀경찰에 끌려가 호된 심문을 당했다.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필명을 사용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부가 서방 기업에게서 사들인 통신 감청기술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클레는 “감시 시스템까지 수출하는 기업의 무분별한 이기심이 시리아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개했다.

위키리크스는 휴대폰이나 이메일 도청, 인터넷 검색기록 등 광범위한 감시 기술을 개발ㆍ판매한 25개국 160개 기업의 명단을 1일 폭로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 전자ㆍ통신 업체들이 명단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 기업이 외국에 판매한 제품 목록도 상세히 공개됐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는 “10년 전만 해도 미 국가정보국(NSA)나 영국 국가통신본부(GCHQ)에 소규모로 공급되던 ‘스파이 시스템’이 전 인류를 감시하는 초국가적 산업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감시기술의 수요는 상상을 초월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2일 ‘텔레스트래티지스’라는 통신서비스 업체가 10월 미 매릴랜드주에서 연 기술설명회를 사례로 들었다. 이 업체는 수백대의 휴대폰과 수만명의 이메일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들 뿐 아니라 43개국에서 대표단을 파견할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9년 전 첫 설명회를 개최했을 때 불과 35명이 참석했던 이 업체의 연 매출은 50억달러에 이른다.

전자 감시망의 장점은 고객의 요청에 따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점이다. 독일 디지타스크사가 개발한 장비는 카페와 공항 등에서 무선인터넷을 쓰는 이용자만 골라 추적한다.

위키리크스는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현재의 감시 기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자 커뮤니케이션 형태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대 고객은 단연 아랍권 국가들이다. ‘아랍의 봄’에 놀란 중동의 전제정권들은 반정부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비밀조직을 색출할 목적으로 통신검열 제품을 대량 구매하고 있다.

정부기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업체 중 최소 17개사는 지난 5년간 연방수사국(FBI)이나 NSA 등 미 정부기관과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류ㆍ야생생물보호국(밀렵꾼 적발), 농무부(보조금남용 감시) 도 있다.

감시기술의 판매와 수출이 가능한 것은 느슨한 규제 탓이다. 법과 제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전화 등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합법적 가로채기”(제리 루카스 텔레스트래티지스 회장)라는 말까지 나온다.

WP는 “미국에서 전화 도청을 하려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해외로 팔리는 기술에는 제한이 없다”며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경제제재를 받는 나라도 중개자를 통하면 판매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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