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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화병난 흑산도 "홍어 씨 말리는 중국 어선 씨 말릴 길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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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화병난 흑산도 "홍어 씨 말리는 중국 어선 씨 말릴 길 없나"

입력
2011.12.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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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해에서 조업하는데 중국어선 수십여척이 막무가내 떼거지로 돌진하면서 ‘비키라’는 신호(서치라이트)를 하더라고. 기분은 더러웠지만 무서워 저항도 못하고 도망쳤지. 흑산도에서 태어난 내가 잘못 아니겠소.”

“중국어선이 배 옆구리를 들이박고 도망치는데, 해경이 검거는커녕 제대로 쫓아 가지도 못하더라고. 이 어선은 자기들 중국어선 100여척 가까운 무리에 숨어버리니 방법이 없재. 우리 배는 수리비만 3,000만원, 이것저것 합치면 손해가 7,000만원 나왔당께. 미치기 일보직전이지.”

29일 오후 1시께 전남 목포시에서 120㎞ 떨어진 신안군 흑산도해역 너머 한국측 배타적 경계수역(EEZ). 1,5m 높이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지켜보던 흑산선적 2영진호(15톤급) 심동열(55)선장은 흑산도로 뱃머리를 돌려 조업을 끝냈다. 파도를 보니 저녁 무렵 풍랑주의보가 내려질 기세이기 때문이다. 이번 홍어잡이도 결국 허탕이다. 지난 25일 출항 이후 4박5일 동안 고작 흑산 홍어 11마리에 아귀만 100여마리 잡았다. 심 선장과 선원들 5명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더군다나 주낙 150개(1개 6만원)를 잃어 버렸으니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길이 200m에 달하는 홍어잡이 주낙 1바퀴에는 10㎝간격으로 낚싯바늘 수백개가 이어져 있다. 심 선장은“그 놈의 쌍끌이 중국어선 때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어종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잡는 중국어선의 저인망식 어로작업에 주낙까지 끌려가버린 것이다.

이날 저녁 7시 풍랑주의보 예보 탓인지, 흑산도에는 홍어 배와 조기 배 등 10여척이 정박했다. 전 같으면 갓 잡아온 흑산 홍어에 막걸리를 걸치고 떠들썩할 법도 한데 선창 주변에는 여기 저기 한숨 소리만 가득했다. 대광호(21톤) 최한동(72)선장은 “서해바다가 중국어선 때문에 황폐화되고, 우리 어장을 지킬 수가 없어 화병이 생길 것 같아 홍어잡이를 그만 놓겠다”고 울먹였다. 앞으로 10년은 끄덕 없다고 주위에서 만류하지만 최 선장은 “내년 3월에 감축(폐업) 신청을 할 것”이라며 막걸리를 털어 넣었다.

홍어 씨 말리는 중국어선들의 횡포

현재 흑산, 군산, 태안, 제주 일대 EEZ에서 조업허가 받은 중국어선 척수는 1,645척. 하지만 허가 받지 않고 조업을 하는 중국어선은 이보다 최소 2, 3배가 넘는다고 한다. 특히 홍어 뿐만 아니라 조기 등 어종이 풍부한 흑산도 해역 일대에는 조기이들 불법 중국어선들은 주간이나 날씨 좋은 날에는 중국 측 영해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야간을 틈타 30~50척, 많으면 100척 이상이 떼지어 우리측으로 넘어와 불법 조업을 한다. 이는 경비정이 한꺼번에 많은 어선을 단속하지 못하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렇게 불법 어업을 하다 2~3척이 우리 경비정에 나포되면 이들 어선들은 2,000만~7,000만원 정도의 담보금을 공동으로 부담한다.

과거 중국어선들은 흑산도 일대 해역에서 조기잡이용 중층 어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어망을 바다 중간까지만 내리는 식이다. 하지만 4년 전부터 바다 밑바닥까지 ?는 쌍끌이 저층어법을 이용해 조업을 하고 있다. 조기뿐만 아니라 바다 밑바닥에서 서식하는 홍어를 잡기 위해서다. 중국 어선들이 흑산도 일대에서 이런 식의 조업을 하는 것은 국내에서 홍어가 금값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홍어 상품(上品ㆍ10kg)은 60만~100만원을 호가한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홍어의 어종 보호와 남획을 막기 위해 7척 밖에 홍어잡이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바다 밑바닥에 주낙을 깔아 잡는 전통방식으로만 홍어 조업을 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쌍끌이로 바닥을 ?고 있는 중국어선들의 무차별 조업에 홍어 씨가 마르고 있으니 ‘미치겠다’는 어민들의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여기에다 해저에 깔아 놓은 어구(주락)가 중국어선의 쌍끌이에 손상돼 큰 피해를 보고 있어 홍어잡이 어선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흑산도 어민 A(57)씨는 “중국어선들의 타망어업(쌍끌이)을 계속 내버려두면 서해바다는 황폐화 되고 만다”며“황금어장의 어린 고기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가는데도 우리 정부와 해경은 국제적 마찰을 두려워 우리 어민들에게 참으라고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민들,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특단의 대책 요구

이 때문에 신안 흑산도 홍어잡이 어민들은 최근 정부를 상대로 ‘흑산 홍어 보호수역 지정’과‘금어기 조정’을 건의키로 의견을 모았다. 실제로 중국어선들은 홍어가 많이 잡히는 지역을 우리 어민들만큼이나 잘 알고 있고 그 지역을 선점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11~12월 홍어의 살이 오르고 가장 맛있는 시기라 중국어선들이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흑산도수협관계자는“어민들이 바다에서 어획량 획득이 줄어들면서 덩달아 흑산도 야경도 함께 죽어가고 있다”면서 “우리 어업보호를 위해 함정과 인력을 충원하고 해경기지센터설립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목포해경 관계자는 “영해상에서 중국어선 범죄의심에 대해 추격권은 있으나 검색 권한은 없다”면서 “드넓은 바다에서 불법 중국어선 단속 하기에 어려움이 많으나 우리 어민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흑산도=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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