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 책임연구원 이모(36)씨는 지난해 12월 사내 연구실에서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인 옥사이드 티에프티(Oxide TFT) 자료 일부를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는 클린용지(먼지가 나지 않도록 만든 A4 종이)에 옮겨 적었다. SMD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모든 종이는 보안용지라 출입문에 설치된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옥사이드 티에프티는 LCD 생산원가를 낮추고 해상도는 크게 높일 수 있는 신기술로, 향후 투명ㆍ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 제조에도 활용될 수 있다. SMD는 4년간 40억원의 연구비와 연구원 30여 명을 투입해 이 기술을 개발했다.
이씨는 빼낸 자료를 집 컴퓨터에서 문서로 작성해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인 B사 김모(39) 부장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김 부장과 이씨는 과거 하이닉스반도체에서 분사한 하이디스테크놀로지와 SMD에서 같이 근무한 사이. 이씨는 수사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메일 계정도 부인의 것을 이용했다.
치밀한 수법이었지만 기술이 유출된다는 첩보를 입수한 국정원과 경찰의 1년여에 걸친 추적으로 이씨의 범죄는 꼬리가 잡혔다. 그는 경찰에서 "향후 B사에 이직할 생각으로 자료를 넘겼다"고 진술했다.
세계 최고인 우리 디스플레이 기술이 대기업 연구원들을 통해 중국으로 흘러나가고 있다. 조직적으로 연구원들을 포섭하는 행태로 미뤄 이미 상당한 기술이 유출됐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씨와 LG디스플레이(LGD) 연구원 김모(37)씨, B사 김모(39)씨 등 3명을 구속하고, B사 전략실 직원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B사 측은 "직원들이 한 일로 회사와는 관계 없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양벌규정에 근거, 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해선 국내 최초로 B사 법인도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연구원 김씨 역시 하이디스테크놀로지에서 함께 근무해 친분이 있던 중국 B사 김모(37) 부장에게 포섭돼 5.5세대 아몰레드(AMOLED) 기술 정보를 넘겼다. 상용화된 4.5세대 패널보다 두 배 정도 커진 아몰레드 패널(1,500㎜ⅹ1,300㎜) 원가정보와 공정도 등이다. 아몰레드는 올해 세계시장 규모가 4조7,000억원(42억 달러)이고, 내년에는 9조5,000억원(86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다국적 기업들이 개발에 열을 올리는 기술이다.
김씨는 자신의 연구실 컴퓨터에 5.5세대 아몰레드 사업계획서 파일을 열어 놓은 뒤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수사기관을 의식해 휴대폰 사진은 B사 직원 부인의 이메일로 전송했다. 김씨는 이메일 전송 전 B사로의 이직을 약속 받았다.
문제의 B사는 2003년 국내 LCD 기업을 인수해 핵심기술만 빼간다며 논란이 됐던 업체다. B사 전략기획실 직원 20여명 중 10명은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 연구원 출신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출된 기술은 상용화 전이라 시장가치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후발 업체가 얻을 경우 기술 격차를 단번에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원=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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