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쿠투치강 지류들이 정화조가 없는 고산 지역 마을의 생활 하수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낙후된 현지 사정에 맞는 하수 처리 시스템을 고안했습니다."
지난해 7월 에콰도르 안데스산맥 중턱 해발 3,000m에 위치한 인구 50명의 작은 마을 산타로자에 낯선 한국인이 나타났다. 주민들이 구정물을 계곡 아래 흐르는 강으로 그냥 쏟아버리는 모습과 있으나 마나 한 열악한 마을 정화조를 주의 깊게 지켜본 그는 6개월 후 마을 회의를 소집해 도안 하나를 내밀었다. 마을 하수를 콘크리트 정화조에 모은 후 파이프를 통해 강변의 돌을 엮어 만든 가로ㆍ세로 2m, 높이 3m 크기의 필터와 갈대밭으로 통과시켜 정화하는 친환경적 하수 처리 시스템이었다. 물이 산의 경사를 타고 내려가기 때문에 전기 등 외부동력이 필요 없고, 돌 사이와 갈대 뿌리에 있는 미생물이 물을 깨끗하게 한다. 처음에는 "하려면 해보라"며 시큰둥해 했던 주민들은 막상 장치가 설치되자 "강이 한결 맑아졌다"며 신기해했다.
이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퇴직한 전문 인력 해외봉사 프로그램인 중장기자문단 1기로 지난 여름부터 1년간 에콰도르에 거주한 최의소 고려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69)의 작품이다. 최 교수는 정년 퇴임한 5년 전부터 몽골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 개도국을 돌아다니며 현지 수준에 맞는 수도 시스템을 개발해 왔다. 에콰도르 산타로자 마을의 하수 처리 시스템처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기술만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최 교수는 사회적 비용은 줄이고 효율과 공공성을 높이는 이른바 '적정기술'의 선구자다.
"정년 퇴임할 때 '앞으로 뭘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미국에서 유학했던 1960~70년대에 미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장학금을 받았던 것을 개도국 원조를 통해 갚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최 교수는 "과학기술의 본분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하수 처리 시스템에 대해 "인구 1인당 20~30 달러 정도의 비용만 들이면 10년 이상 특별한 관리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에 주민 건강을 고려하더라도 현지에 거대한 병원을 지어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며 "에콰도르 고산 지역 마을 전체로 확대하면 약 50년간 오염되어 온 아마존강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의 하수 처리 시스템은 지난 3월 에콰도르의 환경 저널인 '에콴비엔테'(Ecuanbiente), 지난 6월 세계물협회(IWA)의 저널 '워터 21'(Water 21)에 실리면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2일에는 서울대 엔지니어하우스에서 (사)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서울대 공학연구소, 서울대 공대 적정기술 클러스터가 주최하는 '적정기술 국제컨퍼런스'에서 모범 사례로 발표된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