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5호 담당제'라는 게 있다고 배운 것이 초등학교 때이던가. 다섯 집씩 묶어 서로 감시해서 반동분자를 찾아내는 제도라고 했다. 선생님은 한 동네 이웃끼리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라니, 북괴 도당은 얼마나 나쁜 놈들이냐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무시무시한 나라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남쪽 정권도 국민을 협박하며 입을 틀어 막았다는 사실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부하가 쏜 총에 숨진 19년 장기 독재자에 이어 광주 대학살로 집권한 대머리 군인이 대통령이던 그 때,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고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진실을 불온서적과 대자보, 최루탄 냄새 자욱한 시위 현장에서 배웠다.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으니 신세 망치지 않으려면 그저 입조심 말조심 하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
오래 동안 잊고 있던 옛일을 다시 떠올린 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덕분이다. 뉴미디어정보심의팀을 만들어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글과 사진, 스마트폰 앱을 단속하겠단다. 음란물이나 명예훼손,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거나 각종 범죄를 부추기는 내용 등 해로운 것을 걸러내기 위해서라는데, 전담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 적극적으로 신고를 받겠다고 한다. 신고라니,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라고? 그 소리를 들으니 북한의 5호 담당제가 절로 떠오른다. 도대체 국민들에게 이런 짓을 하라고 권하는 정부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 고자질 이간질을 격려하다니, 나라를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 셈인가.
공개적 발언의 장인 동시에 사적인 공간이기도 한 SNS 세계를 국가 권력이 단속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위험해 보인다. 친구끼리 수다 떨 듯 가볍게 쓴 글 한 줄까지 정부의 감시를 받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나쁜 일이다. 그건 표현의 자유가 있고, 사생활을 침해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받을 대접이 아니다.
심의 기준도 애매하다. 다른 건 몰라도 음란물은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지만, 무엇이 명예훼손이고 무엇이 국가보안법 위반인지는 깊이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라,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에게 판단을 구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사람 주눅 들게 하기는 딱이다. 권력자가 감추고 싶어하는 진실을 폭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거나 정권을 비판했다가 국가보안법에 걸려 경을 치는 사람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결국 유해 정보를 차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람들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하는 것도 그래서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 하수상한 시절을 만나니 공론정치를 강조했던 세종대왕 말씀이 새삼 귀하다. 세종 13년 3월 5일자 실록에 나오는 기록이다. 언로(言路)를 틔웠더니 참소가 많을까 걱정이라는 한 신하의 말에 세종이 말했다.
"말이 혹시 사리에 맞지 않더라도 죄를 주지 않기 때문에 마음 속에 품은 바를 숨김 없이 말하므로 간혹 진위(眞僞)가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나 내게 유익한 것이 많다."
말을 못하게 입을 틀어 막으면 숨이 막히는 법, 세종은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었다. 지금 대통령 생각은 어떠하신고. 동의하시는지.
오미환 문화부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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