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발생한 영국 대사관 습격사건이 국제적 논란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란 정부가 시위대의 대사관 난입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이란은 외교관 보호를 명시한 국제협약을 위반한 것이어서 경제적 고립에 더해 외교 제재까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과격 청년 수십명이 영국 대사관 건물로 난입, 각종 서류와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초상화를 훼손했다. 200~300명의 또 다른 시위대는 대사관에서 북쪽으로 수 ㎞ 떨어진 대사관저를 급습해 기물을 파손했는데 이 모습이 이란 국영TV를 통해 방영됐다. 영국 BBC방송은 "1979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사건 이후 최악의 외교적 폭거"라고 비판했다.
국제사회는 이란의 비인도적 처사를 일제히 규탄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이란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없다면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정부는 30일 이란 주재 대사관 일부 직원의 철수 결정을 내렸다. 노르웨이와 독일도 각각 테헤란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고, 베를린 주재 이란 대사를 소환해 항의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만장일치로 이란 비난 성명을 채택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보리는 "이란은 외교ㆍ영사관의 재산과 인력을 보호하고 국제적 의무를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성명이 언급한 국제적 의무는 1963년 채택된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의미한다. 협약은 외교관의 면책 특권과 보호 내용 등을 담은 것으로 이란이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추가 제재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 셈이다.
이란 정부의 배후설을 입증하는 정황은 여럿 있다. 현지 경찰은 영국대사관이 시위대에 의해 유린될 때까지 아무런 진압 작전을 펴지 않았다. 이란 당국이 200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정치 집회를 철저히 통제해 온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또 ▦전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영국을 서구제국주의 상징으로 못박은 점 ▦이란 의회가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격하하고 영국 대사를 추방하는 내용의 법안을 가결한 점 ▦습격을 주도한 청년들이 친정부 준군사조직인 바시즈민병대 소속이라는 점 등도 기획 테러라는 의심을 품게 한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카림 사자드푸르 연구원은 "하메네이는 서방의 압력이 거세질 때마다 더욱 급진적 태도를 취해야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란은 왜 영국을 겨냥했을까. 표면상 이란이 공적으로 규정한 미국, 영국, 이스라엘 가운데 영국만 테헤란에 대사관을 두고 있어 표적이 되기 쉽다. 하지만 이보다는 양국 간 뿌리깊은 악연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이 우세하다. 영국은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란 팔레비 왕조가 나치 독일과 협력을 강화하자 구소련과 연합해 이란을 점령하고 레자 샤 국왕을 축출했다. 이란 지도자들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아야톨라 알리 호메네이 최고지도자 기소 사건에도 영국 정보기관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믿고 있다. 양국관계는 1988년 인도계 영국 시인 샐먼 루시디가 <악마의 시> 를 발표한 뒤 단절되기도 했다. 악마의>
뉴욕타임스는 "이란 정부는 지난 150년간 정권을 위협한 주요 사건에 영국의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했다고 확신한다"며 "미국조차 영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로 여길 정도"라고 지적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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