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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별빛 보호지구' 1호 횡성 천문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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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별빛 보호지구' 1호 횡성 천문인마을

입력
2011.11.3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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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을 캐고 안식을 긷는 별 농사꾼들의 해방구

하늘 맑아지는 초겨울 밤이면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주로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뱉을 때.

'죽은 친구의 넓적다리뼈를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류의 까마득한 선조들도 밤이면 별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지 않았을까.'

서정주와 아이작 아시모프의 감성을 술기운에 버무린 이런 허튼 생각이, 현대 물리학과 분자생물학이 밝혀낸 생명체의 우주기원설과 맥이 닿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인데, 이제 겨울 밤이면 별을 바라보긴커녕 그저 춥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네온과 LED 불빛 말고는 쳐다볼 것이 없어졌다는 핑계를,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대곤 한다.

각설하고, 오랜만에 간절히, 이유 없이 별이 보고 싶었다. 살다 보면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이건 그 뜬금없는 욕망에 대해 미리 붙이는, 어울리지 않는 사족이다.

"어휴, 안 보여. 엄마 왜 이렇게 깜깜한 거야?"

네댓 살 돼 보이는 아이는 밤이 까맣다는 사실이 신기한 듯 말했다. 깨끗한 생수를 사다 먹고 공기청정기로 정화한 집에서 살아도 막을 수 없는 공해가 도시의 불빛이다. 아이는 아마추어 천문가인 아빠를 따라 그 공해를 벗어나 이곳에 막 도착했다. 작은 유리창으로 새어 나오는 화목난로의 불꽃 외엔 온통 흑단나뭇빛 어둠인 세상. 지붕 위에 어슴푸레 반구형 돔의 윤곽이 보인다. 여기는 북위 37도 22분 11초 동경 128도 10분 52초, 우리나라 첫 번째 '별빛 보호 지구'인 천문인마을이다.

찐빵으로 유명한 강원 횡성군 안흥면에서 영월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강림면 월현리. 그 흔한 모텔이나 돼지갈비 굽는 가든 하나 없는 외진 산골이다. 드문드문 있는 인가도 저녁밥 짓는 연기 오르고 얼마 안 돼 모두 전깃불을 끈다. 약 20년 전 "별빛 중독자"인 화가 조현배씨는 길을 잘못 들어 이곳에 왔다가 "은하수가 흘러 넘치는" 무공해의 밤하늘을 발견했다. 그리고 1997년 천문인마을을 세웠다. 이후 이곳은 조씨와 비슷한 중독 증세를 앓는 이들의 아지트, 혹은 집단 요양시설이 됐다.

11월 26일 천문인마을로 갔다. 실가락지 같은 초승이 저녁 하늘에 걸리는 음력 초이틀. 전국 아마추어 천문가 가운데 내로라 하는 고수들이 이날 모인다고, 조씨로부터 미리 얘기를 들은 터였다. 그러나 이날 날씨는 잔뜩 흐렸다. 하늘은 달빛조차 투과하지 않는 비구름에 가려 있었다. 그런데도 성우회(星友會) 회원 심용택씨의 개인 관측소 지붕은 열려 있었다. 그의 어린 아들이 재미있는 듯 망원경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전날 이곳에 온 그는 밤을 꼬박 새웠다고 했다. 하지만 눈빛은 맑았다.

"어젯밤은 정말 별을 보기 좋았어요. 보세요 이게 자정부터 2분 30초씩 78장 촬영해 합성한 별의 일주 운동 사진이에요. 여기 스치는 게 별똥이에요. 정말 잡기 힘든 장면인데…."

천문인마을에는 심씨와 같은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개인 관측소가 10여곳 있다. 하나의 천문대라기보다는 작은 천문대의 집합체인 셈. 조씨는 "하늘에 씨를 뿌리고 물을 줘 별빛을 수확하는, 밤하늘 농사를 함께 짓는 공동체"라고 천문인마을의 성격을 설명했다. 이곳 이름이 무슨무슨 천문대가 아니라 '마을'인 까닭이다. 원격 조종되는 망원경을 이곳에 두고 서울에서 날마다 횡성의 밤하늘을 들여다보며 별빛을 거두는 마니아도 있다. 물론 천체 관측을 처음 경험하는 일반인에게도 문은 열려 있다.

성우회는 천문인마을 별농사꾼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별을 봐온 사람들의 모임. 심씨는 "밤새 별을 보는 시간만큼은 세상 모든 번민을 잊는다"며 "사람이 만든 빛과 소리가 끊긴 곳에서 밤하늘을 대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이 닫힌 아쉬운 밤. 회원들은 별빛에 중독된 이야기로 관측을 대신했다. 초등학교 때 문방구에서 산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달빛의 감동, 지난 여름 히말라야로 떠났던 별빛 원정의 무용담이 화목난로 곁에서 익어갔다.

"난 그리움이 아닌가 해요. 별에 대한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은 말이죠. 세상에 별을 미워하는 사람, 별빛을 싫어한 문명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별은 모든 인간의 DNA에 각인된 고향인지도 모르죠. 인체의 화학적 성분이 별이 생성될 때의 성분과 비슷하다고 하잖아요."

사람들의 떠들썩한 얘깃소리에 묻힌 조씨의 목소리가 어쩐지 어둡게 들렸다. 별을 관측하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까닭인 듯했다. 천문인마을 일대는 1999년 별빛 보호 지구로 지정됐지만 바로 옆으로 새 도로가 뚫리고 외지인의 별장이 들어서고 있다. "천문대 탓에 발전이 안 된다"주민들의 오해도 십여년째 풀리지 않고 있다. 해발 650m 오지인 이곳까지 광해에 덮인다면, 국내에서 머잖아 별을 볼 수 없을 거라는 게 조씨의 걱정이었다

"밤이 깜깜하다고 신기해하는 아이 봤죠? 머잖아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픽션이 돼 버릴지도 몰라요. 옛날 글 속에나 존재하는. 습관적으로 은하수라는 말을 쓸 수는 있겠죠. 하지만 칠흑 같은 밤하늘에 범람하는 은하수를, 그 황홀한 빛은 결코 픽션의 말과 글로 담아낼 수 없을 거예요."

횡성=유상호기자 shy@hk.co.kr

■ 별빛 여행 알고 가면 잘 보이죠

하늘이 맑은 겨울엔 꼭 천문대에 가지 않더라도 별을 관측할 수 있다. 육안으로도 별자리의 생김새나 위치 정도는 확인 가능하다. 나침반을 챙겨야 보고 있는 별자리를 혼동하지 않는다. 없을 땐 북두칠성과 W자 모양의 카시오페아자리 가운데 있는 북극성을 기준으로 방향을 가늠하면 된다.

계절마다 별자리의 모습과 위치가 다른데 겨울엔 남쪽 하늘의 오리온자리가 기준이 된다. 방패연 또는 모래시계처럼 생겼는데 왼쪽에 있는 큰개자리와 작은개자리, 쌍둥이자리 그리고 오른쪽의 황소자리와 마차부자리를 이은 '겨울의 다이아몬드'만 확인할 수 있어도 중급 수준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하다.

천문대에 갔다면 '주변시'라는 관측법을 기억하자. 망원경으로 봐도 희미한 천체가 많은데, 관찰할 천체를 시야의 가운데 두는 것보다 주변부에 둘 때 더 밝게 보인다. 초점 조절은 반드시 운용자에게 부탁할 것. 천문대에는 별의 위치를 표시한 성도(星圖)가 있으므로 무턱대고 망원경에 눈을 대기 전에 밤하늘 지도부터 살펴보는 게 기본이다.

별똥이 무리 지어 쏟아지는 유성우 기간에 천문대를 방문하면 보다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쌍둥이자리 유성우는 12월 7~15일, 사분의자리 유성우는 1월 1~6일 관측된다. 시간당 최고 100개의 별똥이 떨어진다.

참고 (전용훈 지음ㆍ이음ㆍ2008)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횡성 천문인마을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나와 42번 국도를 타고 안흥면으로 가서 411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남쪽으로 가면 강림면에 닿는다. 통나무학교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천문인마을을 찾을 수 있다. 강림을 거치지 않고 고일재를 넘는 길이 뚫렸으나 아직 포장 전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에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천문캠프를 진행한다. 천문 관측과 숙박 프로그램이 결합된 메시에마라톤, 스타파티 등의 행사도 연다. (033)342-9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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