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국 현지 화폐로 102억달러(약 11조7,000억원) 규모의 외화 조달.
30일 현재 수출입은행의 해외 차입 성적표다. 이는 올해 목표였던 88억달러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지난해 83억달러를 조달한 것에 비하면 19% 증가한 규모다. 연초부터 이어진 중동 민주화 물결,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쓰나미, 유럽 재정위기 및 미국 신용등급 강등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냉각된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실적이다.
특히 그 동안 미국과 유럽에 치우친 외화 차입선을 다변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24일 아시아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얄화 채권 발행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은은 이날 7억5,000만리얄(약 2,300억원) 규모의 현지 채권을 발행, 오일머니로 대표되는 중동자금을 유치하는 데 물꼬를 텄다. 아시아 금융회사 중 리얄화로 채권을 발행한 것은 수은이 처음이다.
사우디는 자국 금융ㆍ자본시장에서 해외 금융기관에 채권발행 자격을 부여하는데 까다롭고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막대한 오일머니를 가지고 있어도 실익이 없으면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리얄화로 채권을 발행한 외국 금융기관은 2008년 미국 JP모건과 네덜란드 라보뱅크, 2009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에 불과하다. 수은과 비슷한 시기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과 미국 골드만삭스 등이 리얄화 채권발행에 나섰으나 고배를 마셨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수은이 다년간 우리기업이 건설하는 사우디 인프라 및 플랜트 건설을 지원해 온 사실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면서 이번 리얄화 채권 발행도 결국 사우디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 대한 투자라고 설명하자 사우디 금융당국이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실제 수은은 국내기업의 사우디 사업에 2009년 25억달러, 지난해 50억달러, 그리고 올해 10월까지 69억달러 등 매년 금융지원을 늘려왔다. 이와 함께 지난 6개월 동안 김 행장의 지휘 아래 중동국가 9개 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70여 차례 투자설명회를 실시하는 등 중동 네트워크를 꾸준히 강화해왔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와 계약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 다른 중동시장으로 차입선 확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수은은 이번 리얄화 채권 발행을 포함해 올해 들어서만 68억달러 규모의 외화를 비(非) 달러권에서 조달했다. 지난해 비달러권에서 조달한 외화 규모가 36억달러인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 과정에서 일본 엔, 태국 바트, 홍콩 달러 등 아시아는 물론, 호주 및 뉴질랜드 달러, 브라질 헤알, 터키 리라, 스위스 프랑까지 아프리카를 제외한 대륙에서 외화를 조달하는 등 차입선도 다변화했다. 수은이 현지 화폐로 채권을 발행한 국가는 22개국에 달한다.
수은이 이처럼 차입선 다변화에 주력하는 이유는 유럽 재정위기, 미국 신용등급 강등 등 특정지역이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외화조달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안전판을 마련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하는 국내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다.
김 행장은 "해외 대규모 사업은 대개 '선 파이낸싱, 후 발주' 추세여서 기술력을 갖춘 우리 기업들이 자금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외화 차입 다변화로 우리 기업의 해외사업을 원활하게 뒷받침 하는 게 수은의 존립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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