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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영화 '완득이'로 다시 빛난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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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인터뷰] 영화 '완득이'로 다시 빛난 김윤석

입력
2011.11.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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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석 "극과 극의 캐릭터라고?… 배우에게 '연기 패턴'이 생기면 끝장"

그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야 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잘해야 300만명이 볼 것"이라는 충무로의 예상을 비웃고 500만 관객까지 넘보는 영화 '완득이'의 예상치 못한 흥행 성적이 그 첫 까닭이었다. '완득이'에서 그가 보여준 권위 실종의 교사 동주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갈망하는 새로운 멘토의 한 모델일 수 있다는 생각도 영향을 미쳤다. 20, 30대 꽃미남도 아닌데 출연작마다 흥행을 시키고,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그의 영화인생도 궁금했다. 무엇보다 동년배보다 늦게 성공시대를 열고 그 정점이 어디쯤인지조차 가늠이 안 가는 '인간' 김윤석(43)의 내면을 탐색하고 싶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막 데뷔한 신인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 궁금하냐는 듯 "왜?"를 두 세 차례 반복했다. 개봉을 앞두고 영화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하는 인터뷰가 아니라는 데도 의아해 했다. 그저 평소처럼 좋은 영화를 만드는데 연기로 일조했을 뿐 뭐 별 것 있겠냐는 속내로 비쳐졌다. 연기 못했다는 말이 더 뉴스가 될 만한 충무로 정상급 배우인 그는 여전히 소탈하고 자신만만했다. 포주로 전락한 전직 형사('추격자')를 맡아도, 순박한 시골 경찰('거북이 달리다')을 연기해도, 인간백정 같은 불랑배('황해')로 변신해도 변함 없이 그가 구사해 온, 굵은 목소리와 단도직입적인 발언 형식으로 그는 질문들에 응했다.

-흥행 안 됐다, 연기 못했다 해야 사람들이 더 주목할 듯합니다.

"야구 선수는 10타수에 3안타만 쳐도 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10타수 10안타를 쳐야 돼요. 한 타석에서 삼진이나 땅볼을 치면 그걸로 융단폭격이 가해져요. 운명이죠. 운명."

-평소 잘하다가 그런 욕을 먹으면 억울하기도 하겠어요.

"그게 행복한 부담감이죠. '완득이' 같은 경우는 분명히 좋은 영화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관객이 많이 들 줄은 몰랐어요. 따뜻한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제 생각보다 컸구나 생각했어요. 더 놀란 것은 동주란 캐릭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에요. 전 동주를 모두가 좋아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멘토로서의 위대함과 완벽함보다는 멘토로서의 허점, 단점을 드러내 아이들과 거리를 단축시키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인간적인 친숙함에 제일 목이 말랐던 거 같아요. 아직도 이러나? 세상이?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데… 허허허."

-전작 '황해'에서 한줌 인간미도 찾기 힘든 역할을 하다 1년도 안돼 캐릭터가 확 바뀌었네요.

"'즐거운 인생'이나 '거북이 달린다'로 인간적인 면을 보여줬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저를 생각할 때 굉장히 강렬하고 무시무시한, 피도 눈물도 없는, 마초로 생각하더군요. 아아, 사람들이 의외로 선입견들이 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실제론 성격이 그리 세지 않으시죠?

"(잔뜩 얼굴을 구긴 채)뭐?… 하하. 난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재미있게 인터뷰하는 거 좋아하고요."

-치밀한 악인 역할은 해도, 말쑥하고 착한 주인공은 못해봤잖아요.

"소위 악역이라는 것은 다 생존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삶을 생존과 생활로 나눈다면 생존이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인간이 있어요. 게임에서 지면 죽는 그런 인간이 생존에서 이기면 악인이 되는 거예요. 지면 가엾은 사람이 되고요. 저는 거의 다 이기는 캐릭터를 연기했죠. 역대 최강의 야수, 살기등등의 표현을 들었는데 그런 역할만 하다가는 사람이 좀 이상해질 듯해요. 가끔 '완득이'처럼 생활이라는 것이 주는 섬세함을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극과 극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는데 출연 결정 기준은 어떤 건가요?

"드라마적인 완성도가 기준이죠. 그리고 감독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죠. 관객들이 극과 극의 캐릭터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악인을 연기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생존경쟁에선 목숨이 달렸는데 무슨 악인이 따로 있어요. 반칙을 쓰더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게 사람이죠."

-연기자로 살아오면서 생존을 위해 반칙을 하신 경우가 좀 있나요?

"안타깝게도 그런 적은 없어요. 제가 무슨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 것도 아니고 서울시장 선거 나간 것도 아닌데. 극악하게 극단적으로 몰린 적은 없죠. 경제적으로 몰린 시기도 없었어요. 저는 연극을 하면서도 밥 먹고 잘 살았어요."

-자신은 괜찮아도 주변에서 걱정해주잖아요.

"그건 아주, 정말 아주 옛날 얘기죠. 직장을 잡아야 하지 않느냐 뭐 그런 걱정들이죠. 누구나 겪는 거잖아요. 그 시기가 지나고 저는 자연스럽게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갔고 운 좋게도 (대학로 극단) 학전에서 연극을 할 때 파격적인 금액의 월급까지 받았으니까요. 너무 많이 받아서 금액을 밝힐 수가 없어요."

부산 동의대 독어독문학과에 다니다 연극에 빠져든 김윤석은 1990년대 중반 대학로 명문극단 연우무대에 입단하며 서울로 진출했다. 동향이자 친구인 송강호를 그곳에서 만났다. "4년 가량 연기를 하다"가 낙향해 3년 정도 부산에서 머물며 연기를 멀리하다 다시 서울 무대로 복귀했다. 대학로에서 각광받는 배우였지만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반면 그 기간 송강호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로 발돋움했다.

김윤석은 2004년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형사와 2005년 TV드라마 '부활'의 천사장을 연기하며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 2006년 뻔뻔한 중년남성을 연기한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로 주부들 눈을 사로잡았고, 그 해 개봉한 범죄영화 '타짜'에서 인정사정 없는 전문 노름꾼 아귀를 연기하며 충무로에선 매우 드물게 마흔 줄에 스타덤에 올랐다. 2002년 뮤지컬 '의형제'로 유명한 연극배우 방주란과 결혼해 아홉 살, 여섯 살 두 딸을 뒀다. 여느 배우 같으면 전성기가 저물어갈 나이에 그는 진가를 발휘했고, 그의 충무로 입지는 여전히 단단하다.

-친구 송강호가 빅스타로 거듭날 때 부러움, 질투, 이런 게 좀 있지 않았나요?

"백 명의 기자들이 다 물어보는 게 그거예요. (연극 하던)그 시기는 제가 선택했던 것이고요. 제가 연기를 그만둔 시기도 제 선택이었어요. 저보다 앞서가는 친구(송강호)가 함정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는데 자기 길을 잘 가니 저야 박수를 보냈죠. 그 친구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사람인지 전 알고 있었고요. 이런 생각은 했어요. '이제 나에게도 기회가 올 텐데 중요한 것은 조바심과 질투가 아니라 나에게 카메라가 돌아섰을 때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고. 또 저는 그 시기에 정말로 내 인생의 멘토라고 할 (학전 대표)김민기 선생을 만나서 정말로 재미있게 작업을 했어요.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토양을 다져준 시절이었어요."

-스타 감독을 만나 편한 길을 갈 수 있는데 꼭 그런 영화만 출연하진 않아요.

"전 늘 '어떤 시기에 들어온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한다'를 최고의 답으로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감독을 만나는 거죠. 시나리오는 감독이 배우에게 보내는 일종의 러브레터잖아요. 날 사랑해달라는 러브레터니 그게 마음에 들면 만나는 거죠. 일종의 선을 보는 것으로 서로의 성격을 조율하죠. 결혼을 할 거냐 말 거냐. 그래서 열 가지에서 일곱 가지가 맞아 들어가면 평균 점수 이상을 받게 되고 그럼 좋은 것이죠. 이견이 있으면 의견을 좁히는 방법보다 서로 한번 투쟁해 보고선 상대가 맞으면 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려요. 촬영 당일에도 판단이 안 서면 두 가지 버전으로 찍어서 나중에 편집할 때 옳은 걸로 가려 해요. 결국 만남의 목적은 영화잖아요."

-첫 느낌, 순정에 따라 움직이는 듯해요. 연애랑 결혼도 큰 조건을 따지지 않고 했을 듯하네요.

"결혼 당시 제가 따질 조건이 하나도 없었어요.(웃음) 그땐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고요. 제가 감히 조건을 내세울 수 없죠. 그냥 고맙죠. 저 같은 사람을 그냥 선택해줘서 고맙죠."

-부인이 연극배우 출신이라 연기 평가를 종종 할 듯한데요.

"같이 술 한잔 마시면서 언제나 하죠. 우리 같은 사람(배우)들의 가장 좋은 친구는 집사람이에요. 누구랑 얘기하겠어요? 같이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편안하게 술을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집에서 애들 재우고 와인이나 막걸리를 마시면서 연기 이야기를 나누죠. 같은 직업을 가졌던 사람으로서의 장점인 거 같아요."

-부인께서 가장 평가가 인색했던 영화나 칭찬을 많이 한 영화는 무엇인가요?

"칭찬은 인색해요. 되게 분석적으로 지적해주고요. 그나마 평가가 인색하지 않았던 영화가 '완득이'예요. '동주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가장 인색했던 영화가 '타짜'였어요.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무서워 아우' 이런 반응이었죠. 나랑 같이 사는 인간이 저런 면이 있었나 그런 거였죠."

-연기 잘했다는 의미도 돼 흐뭇할 수도 있잖아요.

"전 기분이 안 좋았어요. 다른 사람 앞에서는 빈틈 없이 논리적이고 어른스럽게 얘기하지만 아내 앞에서는 또 어린애잖아요. (징그럽다, 무섭다는 말보단)무조건 잘했다는 얘기 듣고 싶죠."

-후배를 칭찬해주시는 편이이신가요?

"후배들에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한 다음에 살짝 칭찬을 해요. '사실 내가 네 팬 인데…'식으로요."

-예뻐하는 후배들은 누가 있을까요?

"조승우는 너무너무 좋아하는 후배예요. 사실 저는 진짜로 김상호 같은 배우를 너무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박효주('추격자'와 '완득이'에 출연했다)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기도 해요, 그 다음에 정유미도 너무 좋고, 심은경도 좋아해요. 다 제가 팬이죠."

-실물을 보니 도시적인 멜로도 어울릴 것 같네요.

"왜 저를 그렇게 전원적으로 생각하시나요. '추격자'이후 제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들이 한정적이에요. 요즘 충무로 대세가 남자 주연 둘을 앞세운 액션이잖아요.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를 풍기는 남자의 모습을 보이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죠."

-본인이 선해 보인다고 생각하나요?

"모르겠어요. 저는 '내가 표현하면 된다'라고 생각하지 제 외모가 이것에 어울리고, 저것에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드라마 '부활'에서 천사장 역할을 했을 때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천상의 목소리라고 했어요. '타짜'에서 아귀 역할을 했을 땐 사람들이 지옥에서 온 목소리라고 하더군요. 그 뒤 '아, 목소리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결정된 (신체적 특징이나) 무언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뭘 해도 된다는 그런 자신감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렇게 들렸다면 제가 말을 잘못한 거네요."

-연기 연륜이 쌓이면 역할마다 패턴이 생길 수도 있는데요.

"그 패턴이 생기는 순간 작살이 나는 거예요. 매너리즘에 빠지는 거죠. 그 패턴을 계속 깨버려야 돼요. 작품의 미학적인 것, 장르적인 것들에 자신을 맞추는 게 제일 무서운 거예요."

-그래도 여러 작품이 밀리면 그런 유혹에 빠질 만도 한데요.

"그러니 저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감독이 도와줘야 해요. 저의 과거 어떤 모습을 보고 떠올라 썼다는 시나리오엔 출연하지 않아요. ('타짜'의) 최동훈 감독이 저와 네 작품을 했는데 저에게 요구하는 모습이 다 달랐어요. 그런 사람과 작업하고 싶죠. '추격자'의 어떤 모습을 봤는데 그날 영감이 떠올라서 썼습니다, 이러면 정중히 사양하죠."

-연기를 안 했으면 뭘 했을 것 같아요?

"저는 노래방을 했겠죠(하하). 먹고 살기 위해 모든 걸 했겠죠."

-나중에 감독 하실 것 같기도 해요.

"미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기도 너무나 잘 하고, 연출까지 너무나 뛰어나신 분이잖아요. 그게 할리우드의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시스템 분업화 덕이에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감독이 시작부터 끝까지 해야 하잖아요. 그런 상황이 계속 된다면 제가 감독은 못 하죠."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채지은기자 cje@hk.co.kr

강지원 인턴기자(서울여대 언론홍보4)

■ 김윤석 "내 인생의 멘토는 김민기"

"뭔가를 끝없이 완성시켜나가는 그 분의 끈기, 집요함은 정말 대단합니다. 항상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서 계속 고치고 또 고치는 모습에선 일종의 윤리의식이나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돼요."

김윤석이 꼽은 인생의 멘토는 가요 '아침이슬'과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등으로 유명한,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다. 김윤석은 "그와 함께한 3년은 정말 힘들었지만 너무나 많을 걸 배웠다"고 말했다.

그가 거론한 삶의 또 다른 멘토는 "술자리 같은 데서 눈치 못 채고 '꼰대 짓'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좋은 술자리에서 제 멋에 겨워 일 얘기만 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타산지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웬만하면 잔소리를 안 한다"고 했다.

언젠가 그의 소속사인 심엔터테인먼트의 심정운 대표가 젊은 후배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고사 끝에 10여명의 후배들과 중국집으로 직행했다고 한다. "짜장면에 술 마시면서 그냥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러다가 '나부터 내 연기 중 후회되는 점 고백할게' 하니 다들 아픈 경험들을 이야기하더군요. 그리고 그들의 질문에 대해 소신있게 답변해줬어요. '넌 이렇게 하라'보다는 각자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죠. 우리 386세대는 윗세대에게 그런 고문을 당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요."

그는 꼰대 의식에 경계를 가지게 된 것도 "김민기 선생님 덕"이라고 했다. "아무리 어린 후배라도 무언가를 지적할 때 일주일 이상은 지켜보는 사려 깊음을 배웠다"는 것이다. "후배들의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게 가장 나쁜 거잖아요.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하게 만드는 독약 같은 말은 삼가야 합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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