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페이스북에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킨 최은배(45) 인천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지난 29일 법관윤리강령 위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자 대다수 현직 판사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페이스북 발언을 법관윤리강령이라는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판사들은 우선 현행 법관윤리강령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하는 것을 직접 제한하는 조항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 부장을 징계할 수 있는 관련 조항은 ‘법관은 명예를 존중하고 품위를 유지한다’(제2조), ‘법관은 공평무사하고 청렴하여야 하며,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제3조1항),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제7조1항) 등 3가지다. 서울중앙지법의 모 부장판사는 “최 부장의 발언은 정당 가입 등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정치적 중립성 조항과 별개이고, 품위 유지와도 관련이 없다. (최 부장이 현재 FTA 재판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재판 연관성도 없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모 배석판사도 “SNS 사용에 대한 근거 조항이 없어 윤리위 입장에서는 징계 자체를 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판사들은 최 부장의 발언 때문에 윤리위가 개최됐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징계할 근거가 명백히 없음에도, 여론에 떠밀려 ‘생색내기’ 이벤트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고법의 모 부장판사는 “결과가 뻔한데 윤리위를 왜 연 것인지 이해도 안 되지만, 하나 마나 한 권고를 대단한 것처럼 발표하는 모양을 보면 결국 ‘법원이 고민은 했다’는 것을 티 내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젊은 판사들은 윤리위가 판사들에게 SNS의 신중한 사용을 권고한 것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북부지법 서모 판사는 30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어제 윤리위의 권고는 판사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취지의 비판 글을 올렸다. 서울중앙지법 단독부의 한 판사는 “서 판사의 글이 올라온 이후 젊은 판사들 중심으로 윤리위 권고의 진의를 두고 말들이 많다”며 “대법원이 인위적으로 판사 개인 행위를 규제하면 반발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최 부장의 입장은 명확했다. 그는 윤리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페이스북 활동은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최 부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판사임을 염두하고 글을 올렸기 때문에 법관윤리강령에 어긋나는 행동은 없었다”며 “윤리위의 결정에 동의하고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 개개인이 SNS를 통해 일반인과 소통하는 것은 건전한 판결에 도움이 되는 등 순기능이 더 많다”며 “문제가 되는 특정 사회현안이나 이슈에 대해 ‘이건 아니다’ 싶으면 말해야 하고, 나 역시 앞으로도 페이스북에 글을 계속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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