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판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최은배(45) 부장판사 문제를 사실상 '불문'에 부친 것은 제재를 가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란을 촉발시켰다는 이유만을 들어 판사 개인을 문제 삼을 경우, 법원 내부를 넘어 사회 전체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행 '법관윤리강령'에는 판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항은 물론, SNS와 관련한 직ㆍ간접적인 조항 자체가 없다. 윤리위는 이날 SNS가 사적 공간인지, 공적 영역인지에 대해서도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때문에 최 부장판사 글의 적절성 심의에 있어 잣대가 된 것은 '법관은 명예를 존중하고 품위를 유지한다'(제2조)와 '법관은 공평무사하고 청렴하여야 하며,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제3조1항),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제7조1항) 등 법관윤리강령의 3개 조항이었다.
윤리위는 그러나 이날 회의 후 발표한 권고문에서 최 부장판사 개인은 특별히 거론하지 않았다. 최 부장판사 문제는 지난 25일 한 언론의 보도 직후 양승태 대법원장이 윤리위에 회부한 정식 안건이었는데도 뚜렷한 결론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는 뒤집어 보면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 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었다"는 SNS 글 자체를 법관윤리강령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SNS 관련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은 데다, 한미FTA 관련 사건 재판을 맡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를 직무수행에서의 정치적 중립 또는 공정성에 어긋난다고 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윤리위는 '법관의 품위 유지 의무' 조항을 들어 전체 법관들에 신중한 SNS 사용을 당부하고 가이드라인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최 부장판사는 물론 사법부 전체에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낸 것이다. 법관의 SNS 사용을 전면 허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경우, 또 다른 제2, 3의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윤리위의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반대로 최 부장판사를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등의 '직접적인' 조치를 취해 일부 소장 판사들이 거세게 반발하면, 사법부 전체가 한바탕 홍역을 치를 수도 있다는 고민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최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 처분이 내려지면 많은 판사들이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윤리위는 또, 법관을 비롯한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의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1시40분에 시작된 회의는 안건의 민감성을 반영하듯, 5시간 동안 열띤 토론으로 진행됐고 오후 6시30분쯤에야 끝이 났다. 윤리위는 최 부장판사의 글이나 SNS 문제 외에도, 최근 법관의 부적절한 법정 언행 및 태도로 논란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당사자와 대리인 등 소송 관계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적절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태도,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고, 편견이나 차별, 모욕이나 희롱으로 느껴질 수 있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 등의 권고안도 채택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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