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29일 당 쇄신 연석회의에서 자신의 재신임을 묻는 '깜짝 카드'를 내놓았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를 다시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라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전격 선언한 뒤 회의장을 떠났다.
박 전 대표의 대표직 복귀와 자신의 사퇴 문제를 연계시킨 승부수였다. 이날 "박 전 대표가 지금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낸 의원들은 소수에 그쳤으므로 홍 대표는 일단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홍 대표의 위기는 연말 이후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 새해 예산안 처리 이후 여권에서 총선 승리를 위한 '당정청 인적 쇄신론'이 분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10ㆍ26 재보선 참패 이후 홍 대표 체제는 흔들렸고, 그의 퇴진 문제는 이날 연석회의의 최대 쟁점이었다. 정두언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홍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이에 홍 대표는 의원들의 토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조건부 대표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홍 대표의 사퇴 카드는 위기 돌파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당장 대표직에 복귀할 뜻이 전혀 없다는 점을 홍 대표가 잘 알고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쇄신파 의원은 "대안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홍 대표 체제를 일단 유지하자는 당내 의견이 다수였는데, 홍 대표가 선수를 쳐서 재신임을 유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홍 대표 체제 유지'를 지지한 의원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친이계인 이은재 정미경 박준선 이정선 여상규 의원 등은 "출범한 지 5개월 밖에 안 된 지도부를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다"며 지도부 교체에 반대했다. 송광호 최경환 정해걸 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도 "박 전 대표가 지금 나서는 것은 시기상조" 라며 입장을 같이 했다. 지도부 교체를 주장한 인사는 정몽준 전 대표와 권영세 정두언 홍일표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와 가까운 차명진 의원, 정우택 전 충북지사 등 일부에 그쳤다.
그러나 일단 잠복한 홍 대표 퇴진론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 한 중진 의원은 "홍 대표 스스로 사퇴를 거론한 이상 두고두고 화두가 될 것"이라며 "홍 대표는 '시한부 재신임'을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친박계가 박 전 대표의 올 연말 등판 가능성은 부인하면서도 "야권 통합 등을 지켜본 뒤 내년 초에 결정할 문제"라고 여지를 두고 있는 점도 변수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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