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10월 경상수지가 42억3,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작년 11월 이후 1년 만에 최대 흑자폭이다. 하지만 내용 면에선 그다지 장밋빛이 아니다. 수출이 많이 늘어서가 아니라 수입 둔화 폭이 더 커진 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재정위기 심화에 따른 '불황형 흑자'라는 진단이 나온다.
그런데 한은의 판단은 조금 다르다. 불황형 흑자 외에 제조업체들의 해외생산 이전에 따른 수출입 감소 영향도 있다는 것이다. 전자업체 등이 중국이나 동유럽 등으로 생산기지를 빠르게 옮기면서 현지 수출입 품목들이 통계에서 제외되는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한은 경제통계국 양호석 차장은 "현재의 수출입 감소에는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불황과 함께 생산기지 해외 이전에 따른 통계적 착시도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10월 통관 기준 수출입 통계를 보면 생산기지 해외 이전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전기ㆍ전자제품이 수출입 감소를 주도했다. 정보통신기기, 반도체 등 전기ㆍ전자제품 수출은 지난달 -2.1%로 뒷걸음질했다. 석유제품(31.1%) 기계류(18.0%) 승용차(16.9%) 철강제품(16.2%) 등의 수출 증가세와는 대조적이다. 올해 연간으로 봐도 전체 수출 증가율은 21.2%에 달했지만, 전기ㆍ전자제품 증가율은 3.1%에 머물렀다.
수입도 비슷하다. 10월 전체 수입증가율은 15.6%였지만 전기ㆍ전자기기 수입은 -0.7%를 기록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휴대폰 등 전자기기의 경우 최신형 제품은 국내에서 생산하다가 유행이 지나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수출 감소에는 수요 감소도 한 원인이지만 해외 이전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전제 수출 가운데 전기ㆍ전자제품 비중이 30%에 육박하기 때문에 통계적 왜곡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한은이 국제수지 통계 개편을 추진 중이다. 다른 나라에서 수출입이 이뤄졌다고 해도 해당 생산기지의 경제적 소유권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우리 수출입으로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각국에 이런 내용을 골자로 국제수지 통계 개편을 2012년까지 이행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제 논의 초기 단계여서 시한을 맞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2013년이나 2014년쯤 해외 생산기지를 통한 수출입도 국내 수출입 통계에 반영하는 개편이 단행될 예정"이라며 "이렇게 되면 달러 유출입 등 외환의 흐름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상품 수출입 왜곡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