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다윗(영세 자영업자)에게 돌팔매를 맞더니 골리앗(대기업)에게 선전포고까지 받아 협공을 당하는 처지다. 더구나 자영업자들의 들끓는 수수료 인하 요구에 "더는 허리띠를 졸라 맬 수 없다"고 버텼지만, 대기업 한마디에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29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최근 7개 카드사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현행 1.75%에서 1.70%로, 체크카드는 1.5%에서 1.0%로 당장 낮추지 않으면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12월 1일부터 계약을 해지(카드결제 중지)하겠다"는 게 요지다. 대기업 최초의 카드 수수료 인하 요구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객이 자동차(현대차와 기아차 전 차종)를 살 때 해당 카드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니, 사실상의 전면전 선포다.
일부 카드사가 "무리한 요구"라고 항변하자 현대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KB국민카드의 자동차 결제를 전격 중지한 것이다. 지난 4일부터 KB국민카드로는 현대차를 살 때 결제가 안 된다. 이에 대해 KB국민카드 관계자는 "현대차 요구를 안 들어줘서 희생됐다는 건 사실무근이고, 10월 말 가맹점 계약이 끝나 협의 중"이라고 해명했다. 현대차 역시 수수료 협의를 마치는 대로 계약갱신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계약 갱신시기와 맞물려 본보기가 된 셈이다.
다른 카드사들은 불똥이 튈까 봐 전전긍긍이다. 업계 1위 신한카드는 현대차와의 계약 만료가 내년 2월이라 결국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삼성 롯데 등 다른 전업계 카드사들도 결국 백기 투항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형은행을 끼고 있는 KB국민카드와 달리 전업계 카드사는 현대차 같은 거대고객이 빠져나가면 손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7개 대형 카드사의 연간 자동차 결제 수익은 1조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불만을 감추진 않았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업계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순익을 내는 현대차가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며 "더구나 재래시장, 영세 가맹점만 체크카드 수수료 1%를 적용 받고 나머지는 1.5~1.7%인데, 대기업이 1%를 주장하는 건 과욕"이라고 불평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물러설 기미가 없다. 카드사의 원가에 비해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자동차 수수료 지급 구조를 바꾸고, 체크카드는 카드사의 금융비용 및 대손위험이 전혀 없는 만큼 수수료 대폭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결국 카드사들은 현대차의 요구를 받아들이되 고객 혜택은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전망이다. 현재 카드사들은 체크카드로 자동차를 일시불 결제하면 전체 금액의 1.2~1.5% 캐시백이나 포인트 적립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항공마일리지(1,000만원에 1만마일리지 정도)를 쌓아주는데, 이를 축소하겠다는 얘기다. 애먼 고객들만 피해를 입게 된 셈이다.
설상가상 30일엔 나이트클럽과 유흥업소, 학원과 안경점 등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소속 60여개 자영업종 종사자(500만명 추산)들이 카드 수수료 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 및 파업에 나선다. "업종 구분 없이 카드 수수료율을 1.5% 수준으로 낮춰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더구나 이날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집회를 잇따라 열 계획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카드업계는 지난달 17일 중소가맹점 범위를 연 매출 2억원 미만, 수수료율을 1.8% 이하로 각각 낮춘 터라 추가 인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