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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의 궤도로 서술돼 온 문학사… 억압되거나 저평가된 작품은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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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의 궤도로 서술돼 온 문학사… 억압되거나 저평가된 작품은 없었나

입력
2011.11.2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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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되풀이 교육되는 한국 근현대 문학사는 김현, 김윤식, 조동일 등 4ㆍ19 세대가 정립한 문학사다. 이를 테면 1900년대 애국 계몽의 신소설, 1910년대 이광수와 최남선의 계몽주의를 거쳐 20년대는 동인지를 중심으로 낭만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등 여러 사조가 나오다 20년대 후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등장한다는 식. 해방 이후 50년대는 전쟁 체험에 가위 눌린 실존주의, 60년대는 소시민적 감각, 70, 80년대는 민중적 계급적 지향, 90년대는 개인화 경향 등으로 시대별 특징을 꼽고 각 시기 대표 작품을 정전화한다. 이런 문학사 서술 밑엔 민족의식이 시대적 역경 속에서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자생적 근대화론'이 깔려 있다.

하지만 한국 문학이 민족문학이란 하나의 이름 아래서 필연적 궤도를 밟아 진화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까. 이 서술 속에서 배제되고 억압되거나 저평가된 작가나 작품은 없을까. 이는 4ㆍ19 세대의 문학사를 극복하려는 소장 학자들이 지난 10여년간 끊임없이 던져 온 질문이다.

푸른역사아카데미가 소장 학자들의 이런 문제 제기를 망라한 한국 근현대 문학사 연속 강좌를 마련했다. 28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매주 월요일 총 25회 진행되는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다. 권보드래 천정환 권명아 이혜령 소영현 정여울 이현우 임태훈 등 문학계 신진 학자들이 강사로 참여했다. 강좌를 기획한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1990년대 이후 탈 담론의 영향 아래서 문학을 풍속론이나 문화사적으로 접근하는 등 문학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지속돼 왔지만, 산발적으로 진행됐던 것도 사실이다"며 "그간의 연구 성과를 한자리에 모아서 새로운 문학과 문학사의 가능성을 탐색하자는 취지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서울 필운동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첫 강의에서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문제의식 전반을 짚었다. 그는 기존 문학사 서술에서 1910년대 번안소설에서 시작된 대중소설의 계보, 즉 최독견 김말봉 정비석 최인호 등은 무시되곤 했고, 식민지 시대 한문학이 활발하게 창작 유통되고 고전 소설이 최고의 판매부수를 올린 사실은 외면됐다고 지적했다. 일제 말기의 일본어 작품이나 시ㆍ소설ㆍ희곡 이외의 다양한 글쓰기 역시 배제돼왔다.

권 교수는 특히 1905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개화기 소설 '소경과 앉은뱅이의 문답'이 정말 기존 문학사 서술처럼 애국 의식을 고취시키는 민족주의 텍스트인지, 20년대 초 낭만주의 사조 또는 데카당스(퇴폐주의)가 정말 3ㆍ1운동 실패에 따른 좌절감의 소산인지 등 다양한 물음을 던지며 기존 문학사의 이면을 탐색했다. 그는 "1920년대 초 장발을 한 문학 청년들이 함께 몰려다니며 거나한 술판을 벌이는 낭만적 분위기는 10년대 조선인들의 자족적 성공 모델인 중절모의 '신사'를 거부하려는 의지로 봐야 한다"며 "현실 부정의 퇴폐적 세계로 함몰됐다기보다는 오히려 3ㆍ1운동을 통해서 세계와 맞장을 뜰 수 있다는 의식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4ㆍ19 세대의 문학론ㆍ역사론에 대해 문제제기가 많았으나 그에 비길 만한 문학사와 대안적 역사인식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새로운 문학사 서술이 진행형의 과제임을 강조했다.

이어지는 강좌에서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1990년대 장정일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풍기문란의 문학사'를 돌아본다. 또 인터넷 필명 '로쟈'로 잘 알려진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는 지젝이란 프리즘으로 1990년대 한국문학을 탐색하는 등 다양한 담론으로 문학사를 가로지르고 '한국문학사의 저주받은 걸작'이란 이름으로 구체적인 작품도 재발견한다는 계획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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